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7일 정치개혁을 골자로 한 비전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선언문 일성으로 수십 년 동안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소수 기득권 편만 들던 낡은 체제를 끝내겠다. 정권교체는 그 시작이다.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며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강한 개혁의지를 피력했다.

선언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번째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없도록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를 존중하고, 국회가 부적격으로 판정한 인사에 임명을 강행하는 불통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법부의 독립과 자율성을 보완하기 위해 대법원장은 대법관 회의에서 호선을 바탕으로 후보 추천을 의뢰하며, 권력 사유화를 막기 위해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밖에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안심형 정부 구성, 국가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전담부처 신설, 일하는 국회, 특권없는 국회, 소통하는 국회, 재정분권 추진, 지역사회 권한 이양, 새로운 사회협약 추진 등을 정치 혁신과제로 내걸었다.

이와 함께 비전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청와대를 도심으로 이전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열린 정책 플랫폼을 만들어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하고, 국민이 정책을 제안하면 전문가가 가다듬는 식의 정책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언뜻 보면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내용들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대선 후보들이나 정치인들이 약속한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 마디로 새로울 게 없다는 말이다. 추상적이고 식상한 말들 뿐이다.

정치 아마추어가 내세울 수 있는 정치 비전의 태생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특히 국회를 일하는 국회, 특권없는 국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존중하지만 엄연히 분립된 권력인 국회를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며 월권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공수처 설치나 사법부 독립 등 대통령 권한의 분산 또한 이미 많은 대통령들이 약속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말한 기존의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으로도 이루지 못한 것들을 분산되고 약화된 권한으로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기존 정치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선 구체적이고 참신하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안 후보의 비전 선언은 기성 정치인의 허언(虛言)을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정치적 검증 과정 없이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한 감성 정치인이 내세울 수 있는 한계만 여실이 드러낸 꼴이다.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분석을 거쳐 이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 후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새로운 정치 개혁의 희망이 되지는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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