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 주제발표

 △이명재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 토론 (가나다순)

 △김주희   문학평론가·대전침례신학대 교수

 △박경희   수필가·진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정연승   소설가·충북도립대 강사

 △채희인   시인·진천문인협회장 

 

● 때·   10월 12일(금) 오후 2시

● 곳·    충북 진천 종박물관 세미나실

● 정리·김재옥 동양일보 취재부 기자

● 사진·임동빈 〃 사진부 기자

 

 /주제 발표/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올해는 포석 조명희 선생이 탄생한지 11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동양일보는 포석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94년 선생의 고향인 진천 벽암리에 표지비를 세웠고, 이후 조명희 문학제를 시작했습니다. 동양일보에서 포석 선생을 조명하기 2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정부주관으로 조명희 거리를 만들었고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될 때 그곳에서또 고려인들이 중심이 돼 문학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조명희 선생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서 문학제를 연다는 소식에, 반성적으로 문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제를 준비하고 개최할 때 일부 지역민들로부터 빨갱이를 추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면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동양일보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모제와 백일장, 문학제, 시낭송 대회 등을 통해 포석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알리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게 이어온 문학제를 지난해 진천에 거주하고 있는 문인들이 자신들이 개최하겠다고 해 동양일보는 기쁘게 이 모든 행사를 포석 선생의 고향 후배 문인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래서 올해 개최한 19회 포석 조명희 문학제는 포석회와 진천문인협회 주최로 열렸고, 동양일보는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깊이 있게 조명하기 위해 학술심포지엄을 새롭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연구결과물은 심포지엄 후에 다시 책자로 제작 할 것입니다. 학술심포지엄의 원년이 되는 해가 올해가 되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발제와 심도 있는 토론으로 포석 문학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먼저 이명재 중앙대 명예교수의 발표에 대해 문학평론가인 김주희 대전침례신학대 교수가 토론해 주시겠습니다.”

 

▷김주희 대전침례신학대 교수 “우리 역사의 특성이 오랜 세월을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며 살아왔다는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고, 국권을 잃어본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민족의 일원으로서 포석 선생도 어쩌면 민족의 개념은 강열하지만 국권과 국가, 민족을 분리해서 의식할 만한 일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권을 잃은 국토, 국가의 영토를 떠나 민족이 모여서 살 수 있는 러시아로 망명을 하는 일이 당대에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항일의 한 방법으로서 사회주의적인 방식을 탐색했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체제이기보다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하는 폭력의 집중, 폭압적 집단의 부당함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떤 체제가 갖는 폭력의 독점을 드러내고, 그 폭력이 정당한가를 회의하도록 반역을 충동질할 아나키즘적 사유체계를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는 없는가 하는 부분이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포석 선생이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와 겹치고, 당대의 아나키즘 역시 일제의 폭압 아래서 그 현실의 타개책으로 탐색되었고, 민족주의 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 두루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포석 선생님도 그에 대해 무지했거나 무관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저희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혹시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서정성이 문면에 드러나는 포석 선생의 작품을 더 풍요롭게 해석해 낼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여쭤봅니다.”

 

▷이 교수 “제가 작품을 분석하고 발표한 것에는 없는데 아마 김주희 박사가 말씀하신 것은 포석 조명희 선생의 작품과 활동에 있어 아나키즘에 대한 물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제가 연구하기로는 포석 작품에서 아나키즘적인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연구과정에서 그것에 대해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시대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반체제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포석 선생이 아나키즘적인 운동을 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사회주의보다 더 약하게 벌을 주는 게 아나키즘 운동이 아날까 생각하기 때문에 포석의 작품을 반체제적인 사상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석 선생은 아나키즘적인 요소를 드러내 놓고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  “김주희 선생께서는 특수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민족과 국가가 분리가 어려운 배경 속에서 포석 선생이 러시아로 망명까지 했고, 또 당시 우리나라 시기에 아나키즘적 활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포석 작품에 아나키즘적인 요소가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이 교수님은 작품 속에서 뚜렷이 아나키즘적인 요소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나키즘이 일제에 대한 반체제 사상이라고 한다면 아마 조명희 선생도 그런 사상을 갖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은 하지만 작품 속에서 포석 선생의 아나키즘적인 면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이어 박경희 진천문인협회 사무국장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경희 진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오늘 발제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포석 조명희 선생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고 그런 가운데 큰 문학적 업적을 남기신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포석 선생이 태어나신 고향의 후배지만 조명희 선생에 대해 잘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연변 포석문학제에 참가해 보니 그 곳 사람들은 학창시절 포석 선생의 소설 ‘낙동강’을 교과서를 통해 배워서 자세히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동안 포석 선생의 고향 후배들도 그 분의 작품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진천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그 분의 문학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품격있는 문학제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기쁜 일은 우리 진천에 포석 공원과 조명희 문학관이 건립되는데 후배 문인들이 포석 선생의 문학적 정신을 이어가면서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발제에 대해 질의하겠습니다.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의도한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 쓰신 ‘짓밟힌 고려’라는 시를 통해 러시아에 살던 우리 민족인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북조선인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 선생께서도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자식들의 이름을 조선아와 조선인으로 지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러시아에서는 ‘짓밟힌 고려’라는 시로 러시아에 사는 우리 민족들이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부르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교수  “조명희 선생께서 1927년에 낙동강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셨는데 아주 평판이 좋았습니다. ‘낙동강’은 서정적인 작품으로 옥살이한 박성옹이가 옥살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의 모습을 굉장히 서정적이고 이념적으로 그렸습니다. 굉장히 가치 있는 작품인데 작품 활동을 한뒤에설을 모아 ‘낙동강’이라는 단행본을 냈습니다. 그 후 이듬해인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하셨습니다. 당시 한반도가 일제 강점화에서 무자비하게 짓밟힌 참상을 봤으나 한국에서는 글로 표현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러시아 땅에 갔으니까 그 곳에서 자유롭게 글을 통해 고발한 것입니다. 그것이 ‘짓밟힌 고려’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한반도를 짓밟고 있다고 고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짓밟힌 고려’의 ‘고려’는 ‘코리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고려’라고 쓰신 것 같습니다. 코리아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시 제목을 그렇게 썼고 시가  큰 인기를 끌면서 ‘고려인’이라는 말도 굳어졌다고 봅니다.”

 

▷유 이사 “다음으로 김승환 교수께서 발표하신 내용에 대해 두 분의 토론의 듣겠습니다. 먼저 채희인 진천문인협회 회장께서 토론해 주시겠습니다.”

 

▷채희인 진천문인협회장

“저는  토론자 입장보다는 질문자 입장으로 세 부분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저는 그간 포석 선생의 문학은 거칠고 투박한 조선 민중의 생활과 해방을 열망하는 민족의식 전망, 사회주의 계급투쟁의 사상성이 담겨 있어 울분, 격정, 고뇌, 비애 등을 담고 있는 것이 포석 선생의 문학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승환 교수님의 발제에서 그간 포석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서정성을 도출해 내 주셔서 조명희 문학 연구의 새로운 창을 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무 문맥의 논리와 용어진술, 소설 구성부분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다만 문맥의 논리는 김 교수께서 컴퓨터상의 오류가 있었다고 발제 전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하고 토론하겠습니다. 발제지 ‘서정의 텍스트’ 부분에서 ‘서정성은 감상과 감흥을 전제로 하며 희노애락애구욕(喜怒哀樂愛懼慾)과 같은 인간의 심성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하셨습니다. 이 문구에서 김 교수께서는 두려워할 구(懼)자를 쓰셨는데 보편적으로는 미워할 오(惡)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교수께서는 포석의 서정 텍스트에 대해 논하면서 ‘서술자의 서술방식이나 서술의 정조(情調)를 결정하는 동시에 서술의 거리나 서사의 진행을 조정한다’고 기술하셨는데 ‘정조’라는 개념은 조금 낯설고 생경합니다. 이후 이 단어가 발제문에 3차례 정도 더 나오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각주를 통해 ‘작중 인물의 서정성과 작가, 그리고 독자의 서정성을 말한다’고 규정하셨는데 혹 이 ‘정조’라는 개념이 소설의 한 요소로서, 브룩스 워렌이 ‘소설의 이해’에서 말한 톤(tone)을 이야기 하신 것은 아닌지요. 이 톤(tone)은 흔히 시에서는 어조라는 말로 널리 쓰이고, 소설에서는 분위기로 번역되어 쓰이는 것으로 이미 일반화 돼 있는데 이를 굳이 독자적 용어를 써서 혼란을 초래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또 이명재 교수의 ‘국제한인문학연구’ 논문을 인용한 ‘서정적 분위기’라는 구절로 인해 이 정조의 개념이 명확해 졌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일반화 된 용어를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소설의 구성에 대해 질의하겠습니다. 발제문 ‘사상의 텍스트’에 ‘도시로 이주한 농님 룡이가 인과적 개연성 없이 혁명의 투사가 되어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이 텍스트 끝 부분에 ‘물론 룡이와 같은 농민일지라도 투철한 혁명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문제는 의식변화를 형상성을 갖추어 서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라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도 일정부분 동의하지만 오늘 이 자리가 포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조명하는 자리인데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이쁜이와 룡이’에서 룡이의 의식이나 행동변화의 계기, 즉 플롯(plot)의 인과성이나 개연성이 생략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제 생각으로는 ‘이쁜이와 룡이’는 미완의 작품으로 충분한 퇴고가 요구되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제자께서는 발제문에 ‘룡이의 내적 변화의 역사의식이 생략되었다고 해서 작품의 형상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정호용의 견해로서 ‘과장된 전망’ 또는 작가의 과잉의식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고 했을 뿐입니다. 즉, 룡이의 의식이나 행동변화의 계기가 생략된 원인만을 규명했을 뿐, 한 편의 소설이 문학예술작품으로서의 구조적 미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발제자께서 ‘룡이의 내적변화와 역사의식이 생략되었다고 해서 작품의 형상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하셨는데 왜 그러한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상의 텍스트라는 논지 전개 속의 일부이나 간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 치열한 당대 현실의 계급모순에 대한 고민이나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 없이 기껏 유추해본다 해도 이쁜이의 배반에 기인한 개인적 분노와 증오, 또는 적개심으로 혁명투사가 되었다는 발상이나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여겨집니다. 또 발표요약문에 ‘이쁜이와 룡이’는 조명희의 생각이 그 당시의 현실적인 반제항일에 분노와 조선의 비극적 현상을 담아내려는 절박성 때문에 소설의 구성에 있어 인과성 결여 현상이 발생하였다고도 했고, 조명희의 의식과잉은 작품의 구조를 훼손하거나 왜곡하지만 그런 순정한 작가 의식이야말로 조명희 문학의 가치로 보시는데 이는 학술적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환 충북대 교수 “채희인 회장님 말씀 모두 다 타당합니다. 부족한 것은 회장님 말씀에 따라 보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희노애락애구욕(喜怒哀樂愛懼慾)에서 왜 오(惡)자를 쓰지 않았냐고 하셨는데 중국철학에서는 두 가지로 씁니다. ‘애오욕’이라고도 하고 ‘애구욕’이라고도 씁니다. 처음 맹자가 썼을 때는 ‘희노애락애오욕’으로 썼는데 나중에 주자가 경전을 정리 할 때 ‘희노애락애구욕’으로 쓰기도 해서 ‘오’자가 앞의 정서와 겹쳐서 ‘구’자로 썼는데 이것도 각주를 달아서 이렇게 쓴 이유를 밝히겠습니다. 다음으로 ‘분위기’라는 말도 있는데 ‘정조’라는 특이한 용어를 썼느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브룩스 워렌의 ‘소설의 이해’에 톤이라고 돼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용어를 쓰다 보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국적인 특별한 열정과 감성을 톤으로 쓰기에는 조금 맞지 않고 가능하면 외래어 쓰는 것을 피해보기 위해 ‘정조’라는 용어를 무의식적으로 썼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썼지만 당시 포석 조명희 선생에게 큰 영향을 줬을 벽초 홍명희 선생이 ‘임꺽정’을 쓰면서 계속 정조라는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1920년대, 소설이 가져야할 분위기와 톤, 열정의 특별한 색감이 소설 전체를 관장하는 개념이다’라는 벽초 선생의 개념을 빌려 썼는데 이것도 적합한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서사 구조에 대한 말씀은 텍스트를 함부로 읽으면 되느냐에 대한 질타로 받아드렸습니다. 포석 조명희 선생을 존중하고 높여야 하는 이런 문학제에서 마치 소설의 형상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하면 문학제의 가치가 저하되지 않겠냐는 말씀 소중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생각해보면 서사구성의 완결성이 없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단재 선생이 1920년대 이러한 비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광수, 최남선 두 작가를 비난하면서 지금 민족이 밥도 굶고 아파하는데 연예소설을 쓰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혁명가적인 울분과 비애를 직접 표출해야지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제정신인 작가냐, 민족 해방이 돼서 국민국가를 이뤘으면 그때 완성된 작품을 쓰고 지금은 작품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족 해방이 중요한 문제니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소설의 서사성이 파괴된 것이야말로 조명희 선생님의 인간적 진정성이 가치가 있게 빛나는 것이고 일제 강점기에 작품의 완성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민족문제나 계급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포석 선생의 문학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도 이론적으로 보강,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연승 충북도립대 강사 “제가 포석 선생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1999년 ‘충북의 문학과 예술 그 숨결을 찾아서’라는 책을 쓰면서였습니다. 그 책을 쓸 당시에는 포석에 대한 지식은 아주 일반적인 내용이어서 포석 조명희 선생에 대한 깊이를 알지 못했는데 오늘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발제와 질의를 듣고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포석의 단편 ‘이쁜이와 룡이’에 나타난 서정·서사·사상성을 말씀하시면서 서정성과 서사성은 소설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결합해야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사상성은 다른 요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작품의 예술성을 떨어뜨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가 작가가 작중인물의 환경을 무시하고 직접 작품 속에 뛰어 들어 서술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김 교수께서는 이를 작가 조명희의 의식과잉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고 하셨는데 단지 의식과잉 문제에만 국한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김 교수께서는 작가 조명희가 작품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간 또 다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포석 선생의 작법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질문하겠습니다. ‘이쁜이와 룡이’의 사건 전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작위적인 부분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구호에만 머물렀던 ‘1기 프로문학’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지만, ‘2기 프로문학’의 구성원들 역시 아직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확실한 전망과 투쟁에 대해 다양한 경험이 부족했기에 타나난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님의 의견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김 교수 “발제문을 써 놓고 보니 포석 조명희 선생의 의식과잉이 예술성을 저해했다고 한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작품을 평가할 때 문학적으로만 보지 않는 것처럼 포석도 문학이라는 외연에서 크기를 더 넓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숨은 제안이 있었습니다. 통일 이후의 문학사 쓰기나 갑자기 북한의 평론가를 만났을 때 너무 차이가 나는 의식을 가졌으면 서로 교용이 안 되는데 그런 점에서 주로 한국에서는 작품을 구조 형식적으로 보는 것이 학계와 문단의 풍조인데 세계적으로는 역사적 문맥이나 사상적으로 보지 형식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또 ‘제국’이라는 책을 쓴 마이클 하트라는 영문학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쓴 제국이라는 책에는 문학을 이야기 하면서 작품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문학을 보는 관점이 문학을 문학에 가두지 말고 외연을 확장시켜 민족사나 사상, 전체적인 인간사회의 보편성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석 선생님의 예술성 형상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했는데 이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에 대한 앞으로의 논문에서는 이에 대해 부연설명 하도록 하게습니다. 낙동강의 문제는 1960~1970년대부터 많이 논의가 돼 왔습니다. 이 작품이 과연 프로문학의 목적의식, 부르주아에 대한 분노와 일체 등을 감상적으로만 쓴 것이냐, 역사적 전망을 갖고 민족해방과 의식투쟁에 대해 쓴 것이냐 하는 창작방법론에 의핸 쓴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조명희 선생이 이 작품을 억지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1925년에 카프가 결성되고 이 시기 문단이 격동적으로 돌아가는데 당시 민족진영계열의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프로계열의 작가들은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프로계열의 작가들은 전부 민족해방을 위해 계급투쟁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은 예술운동이 강화되면 극적인 목소리가 우세하게 돼 있고 그것을 맞추기 위한 운동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포석 선생은 그러한 살인하고 방황하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로 민족적 해방의 전망을 갖고자 하는 창작방법론의 과잉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쓴 작품이 낙동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러나서 쓴 것이 아니라 자귀적으로 쓰다 보니 작품의 서정성과 서사성, 사상성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마음은 급하고 사상성은 뛰어나고 민족해방에 대한 울분은 솟구치고 하니까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데 마음이 급해 작가가 자기 사상을 갖고 작품에 들어가 텍스트의 생명성을 훼손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술성을 훼손했으면 그 문제를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작가야말로 가장 정직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 “서성성과 서사성, 사상성 이 세 가지가 교직이 되면서 작품의 예술성이 떨어지지 않느냐, 작가가 작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설명까지 해 작품이 그것 때문에 예술성이 저해됐다는 질문에 대해 김 교수께서 문학작품을 논할 때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작품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단재 선생을 예로 들면서 답변해 주셨습니다. 시대상황을 고려하는 등 외연성을 넓혀 작품을 평가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조명희 선생은 가장 정직한 작가라고 평하셨습니다. 동양일보는 오늘 이 심포지엄의 발제문과 토론문 등을 다시 정리해 책으로 엮어 포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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