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하늘은 한없이 높고 들판은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설악산, 치악산, 소백산은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우리 고장에도 다음 주면 단풍이 곱게 물들 거라는 예보다. 이렇게 좋은 계절 10월 상달은 고맙게도 ‘노인의 달’이고, 10월 2일은 ‘노인의 날’ 이었다.

‘노인의 달’과 ‘노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저 유명무실한 날로 지나가지 않았던가. 어느 기자가 공원에서 노인들에게 ‘노인의 날’ 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듣고 보니 그런 날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것 같네요. 그러나 그런 행사가 무슨 소용 있어요. 기념행사는 여유 있고 잘난 노인들이나 참가하는 거지, 우리네 같은 못나고 가난한 노인들이야 어딜 얼씬 거리기나 하겠어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조적인 말을 툭 던지고 외면해 버린다. 노인의 날인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녀들만이라도 어버이를 알아 모시면 좋지 않겠느냐고 다시 질문을 던졌더니,

“무슨 소립니까?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 눈치 보이는데….”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은 10월1일이다. 1990년 빈에서 열린 제45차 유엔총회에서 10월1을 ‘세계 노인의 날’ 로 결의했다. 우리나라 노인의 날은 국군의 날이 1일이라 하루 밀려나 10월 2일로 정했으며 1997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엊그제(13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는 도내 노인들의 큰 잔치인 제2회 ‘충북노인문화예술제’ 가 열렸다. 많은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신바람 나게 끼를 발산 했다. 식전행사에 이어 ‘가족공연’ 팀의 장기자랑, 합창경연대회, 악기연주경연, 민요경연이 이어져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한 마음이 되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 했다. 대회의 열기는 그 어느 대회보다도 뜨거웠다. 얼굴에는 고운 티가 가시고 인생계급장인 주름살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장구, 가야금, 기타, 하모니카, 하프 , 오카리나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노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열적이었다. 합창으로 소리를 모으고, 우리 가락으로 흥을 돋우니 경연대회라기 보다는 출연자와 관람객이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하고 함께 박수치는 큰 마당이었다.

서예, 한국화, 사군자, 민화, 시화로 솜씨를 자랑하며 연륜의 깊이와 지혜를 펼쳐 놓는 예술의 큰잔치가 되었다. 매일 쉼 없이 쓰고, 그리고, 땀 흘린 결정체를 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그 작품 안에 녹아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노인의 대열에서 합창단원으로 자리를 지키며 내 임무를 해내느라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7시에 집에 돌아오는 열성을 다하며 하루를 온통 바쳤다. 힘들었지만 성과가 있었기에 피곤도 다 날릴 수 있었다. 하긴 올해 같은 지독한 삼복더위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여름내 참 열심히 연습한 결과였다. 단양, 제천, 영동, 옥천, 음성, 진천 같은 원거리를 새벽밥 해먹고 달려온 이들은 더 고생이 많았을 텐데도 밝은 모습들이었다. 이토록 당당하고 단합된 노인의 모습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무대에 선 출연자들이 ‘아빠의 청춘’을 ‘미워도 다시 한 번’ 을 노래하면 개석에서도 함께 따라 부르는 혼연 일체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질 않았기에 눈물겹게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이었다.

고령화라는 복병이 나이든 사람을 기죽게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경로효친의 미풍을 다시 살려 내고 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혜로 노인도 젊은이와 똑같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각성과 노력에 더불어 사회와 국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 대신 ‘어르신’이라는 한층 격상된 말로 대우도 받게 되었다. 노인 헌장의 문구처럼 가정에서 전통의 미덕을 살려 자손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야 한다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의식주에서 충족되고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하며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누려야하지만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노인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봉사도 해야 한다. 취미. 오락을 비롯한 문화생활과 노후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얻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노인복지회관이 바로 이런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하지만 복지회관에 나오지 못하는 다수의 노인도 행복할 권리는 있다. 거동이 불편해서, 용돈이 부족해서 못나오는 분들은 지역 사회와 국가가 이를 적극 도와야 한다. 유모차를 끌고 종이박스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의 꼬부라진 등이 늘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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