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내년 3월 자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 7월 부임해 2010년 연임된 서 총장은 임기가 2014년 7월까지지만 내년 3월 정기 이사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수개월간 총장 거취를 둘러싼 KAIST의 내홍은 일단락된 셈이다. 앞서 지난 7월 KAIST 이사회는 임시이사회에서 서 총장에 대한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했으나 이를 처리하지 않고 오명 KAIST 이사장과 서 총장이 협상을 통해 거취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동안 서 총장 측은 이사회의 계약해지 추진과 관련해 ‘내가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라’며 강력하게 반발해왔고 오 이사장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한 자진 사임 유도가 정치적 의도가 담긴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서 총장은 부임 이후 경쟁 위주의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학생 전원이 등록금을 면제받았던 KAIST에 성적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해서 내게 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를 도입했고 전 과목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으며 교수 정년을 보장하는 ‘테뉴어’ 심사, 재임용 심사를 강화해 40명을 탈락시켰다. 이러한 개혁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어 KAIST는 세계대학평가에서 순위가 해마다 상승했고 기부금도 많이 늘어났다. 서 총장은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고 다른 대학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경쟁 일변도의 개혁으로 학내 갈등이 심화됐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태가 벌여졌다. 개혁에 따른 압박감이 연이은 자살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받았고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퇴진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 총장 자신도 특허권 도용과 교수 임용 특혜 등의 의혹으로 교수 사회와 불화를 겪었다. 교수들은 두 차례 투표에서 총장을 불신임했고 총학생회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5%가 서 총장의 사퇴에 찬성했다.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KAIST를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려는 서 총장의 뜻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사회가 현실에 안주해서는 발전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도 등록금을 내지 않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학생들에게나 연구에 매진하지 않고도 교수직을 ‘철밥통’으로 여기는 교수들에게나 자극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에는 구성원들의 동의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 패배자를 만들어내는 과도한 경쟁주의와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는 일방통행식 독선은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서 총장의 퇴진에 따라 KAIST에는 내년 1월 총장후보 선임위원회가 구성돼 후임자 선발에 들어가게 된다. 서 총장에 앞서 전임이었던 로버트 러플린 총장도 급진적인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교수들과의 불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퇴한 바 있다. KAIST가 국가가 자랑하는 과학영재의 산실로 거듭나기 위해 대학 개혁이 중단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총장은 교수와 학생들과의 적극적인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점을 과감히 고쳐나가는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