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류 통해 중국 동포의 자긍심·삶의 질 향상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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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일보 이사실
진행 : 김동진 취재부 부국장
기록 : 오상우 취재부 기자
사진 : 임동빈 사진부 차장
 
 
 
 
동양일보는 지역주민의 문화 함양과 문학의 저변 확대를 통한 대중화를 위해 해마다 충북도내 시·군을 순회하며 충북순회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1992년 시낭송회로 시작해 지역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명사 시낭송회로 형태를 바꿔 열어 오다, 2010년부터 충북순회문학제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양일보는 이 행사를 개최하면서 중국동포 문인들을 해마다 초청,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동포 문인들과 교류 확대와 모국 방문을 통해 같은 핏줄로서 동질감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동양일보 초청으로 모국을 다녀간 중국동포 문인들은 1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모국 방문을 통해 우리나라와 중국동포 문인들간 문화 교류의 전령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모국 방문을 계기로 새삼 깨닫게 되는 동포애를 통해 중국 현지 동포들의 우리말·글을 통한 문학 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동포 어린이와 청소년 등 후세들이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중국 사회 내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들의 가치관과 민족정신 고취에도 힘쓰고 있다.
동양일보는 올해 충북순회문학제 참여를 위해 모국을 방문한 중국동포 문인들과 간담회를 마련, 그들의 시각을 통해 제시된 문화교류 방안과 충북순회문학제의 역할,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 강화 방안 등을 들어봤다.사회 김동진 부국장
 
김동진 취재부국장 오늘 나흘째를 맞았네요. 방문 소감은”.
 
리금화 수필가 한국을 처음 온 것은 아닙니다. 충북방문이 처음이지요. 그런데 처음 온 충북에 대한 인상은 무척 아름다워서 좋았습니다. 또 많이 설레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길 것 같습니다. 한국은 2년 만에 들어왔습니다. 기억이 조금 있지요.”
 
김송죽 주필 저는 한국 8년 만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강릉에 한번 왔었고 충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8년 전에도 빠듯한 일정으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몇 곳 행사 끝나고 서울에 들려서 교보문고에 갔는데 눈이 뒤집힐 정도로 놀랐지요. 그곳에서 책을 한 박스 잔뜩 구입해서 들고 가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배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무척 기뻤었지요.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는데 매우 설레었습니다. 우리 남편도 동양일보의 초청으로 지난 2004년에 한국에, 이곳 충북에 왔었는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충북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서울 사람과는 조금 틀립니다. 진실된 얼굴과 마음으로 대해주는 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몇 곳을 돌면서 시낭송 모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인상이 깊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생각해도 되지 않았던 일들이 여기서는 이뤄지고 있는 게 상큼한 충격이었지요. 우리도 시를 좋아하고 쓰는데, 여기오니 시 문화가 조금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나는 분들이 명사가 많지만 행정을 하는 그 분들이 이정도면 다른 분들은 대게 어느 정도일지 미뤄 짐작이 됩니다. 13년 동안 꾸준히 이끌어 온다는 것, 또 지역사회에서 바쁜 일정에도 동참해주는 분들에 대해 존경심이 갑니다. 학생들도 참여해서 함께 진지한 모습으로 품격 있는 문화를 이끈다는 게 우리에게 힘도 되고 깨우침도 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추억이지요.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조명희 시인의 낙동강을 외우다시피 했는데 그분의 고향에서 직접 느낀다는 것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좀 더 푸근한 느낌을 받으면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습니다.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여러 면에서 느낀 것들을 모두 전개하자면 길 것 같네요.”
 
허동식 시인 저 역시 충북에는 처음 왔습니다. 한국은 IMF를 겼었던 게 1997년이니 그 이듬해인 1998년에 서울과 부산, 인천 등을 다녔었습니다. 당시 충북을 와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다녔던 곳의 한국 사람들과 비교를 하자면 당시는 한국사람 얼굴이 많이 흐렸는데 지금 충북은 무척 밝습니다. IMF 때 이전, 88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지금 충북사람들처럼 한국사람 얼굴이 밝고 거리 이미지도 밝았는데 IMF 때문인지 98년도에는 험악하다는 느낌이 있었지요. 당시 한국에서 집안에 간직했던 금을 팔면서 경제난 극복에 동참했었는데 중국에서도 내수 경기 침체로 아파트책이나 자가용책 등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 시기의 서울과 현재 충북은 큰 차이가 나지요. 이번에 처음 온 충북의 사람들 얼굴이 밝아서 무엇보다 좋습니다.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은 사람 심성과 품질이 좋다는 것이겠지요. 조금 빗나간 말인데 금융위기 때 한국은 엄청난 혼란을 겪었지요. 그때 한국이란 나라, 국민들이 세계적 경제파동을 겪어서인지 그런 것을 이겨내는 재간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가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한국은 IMF때처럼 당황하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한 문제도 많이 바뀌었지요. 예전에는 무척 민감했었는데 지금 한국은 북한에 대한 대응책 등이 대외적으로나 대내적 통일안도 무척 수준이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을 말하다 많이 빗나갔는데, 제가 한국의 지리와 역사 등은 잘 모릅니다.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지요. 그런데 이번에 동양일보 덕분에 충북을 와 보니 충북은 유서가 깊은 동네라는 느낌이 듭니다. 중국 어느 지역을 비교할 까 생각해보지만 적당히 떠오르지는 않네요. 정지용 시인, 조명희 선생 등의 생가를 방문하고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제 갔던 진천군의 군민이 64000여명이라지요. 중국의 어느 지역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은 작은 동네도 100만명이 넘는 게 보통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작은 군에 종합운동장, 문화관 등 공용시설과 복지시설 등이 무척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그 시설들에 대한 관리도 매우 잘 된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중국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는 점이지요. 물론 한국 경제력도 있겠지만 그런 시설을 이렇게 잘 운영하는 것은 훌륭한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마음가짐을 갖고 사니 한국이 복지시설도, 공용시설도 잘 운영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배워야 할 것이 이런 점입니다. 이곳에서 며칠 더 생활하다 보면 더욱 많은 것을 배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경순 기자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충청도에 왔는데, 들어와 보면서 현대식 건물 등의 새로운 시설들보다 유적지나, 앞서 말씀했던 정지용 생가 등 유명 인사들의 사당을 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가는 곳마다 관리를 무척 잘 해놓은 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번 행사 주제인 시낭송입니다. 예전 유생들이 문화, 오락 등이 없을 때 시조 읊조리던 맥을 이어 받아서 새로운 문화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이 아주 품격 있는 문화인데 이렇게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아이디어도 좋고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낭송 하나만으로 군민, 도민들의 문화 품위를 올리는 것이 대단합니다. 깊이 사색해 볼 부분이라 느꼈습니다.”
 
김 부국장 옥천과 영동, 청주·청원, 진천 등에서 순회문학제를 실시했는데, 어떠셨는지.”
 
리 수필가 시낭송 하는 것을 보면서 무척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낭송을 좋아했는데 흑룡강성은 중국어만 사용하다보니 조선음운과는 조금 틀립니다. 시낭송대회도 동양일보가 조직적으로 하는 것처럼 우리 학교에서도 한 학기에 1~2번씩 조직적으로 시행하면 시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가서 첫째로 시낭송대회를 조직하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시 쓰기 경시대회를 꼭 할 것입니다. 며칠 전 공군사관학교에서 순회문학제를 할 때 누군가가 매일 5개씩 시를 외운다고 하면서 자기 전에도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고등학생과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고등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많은 과목을 하면서 조선어를 소홀히 하는데 시낭송을 하면 조선어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낭송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고등학생은 매일 2편씩, 중학교는 3편씩 매일 낭송하면서 암송까지 하게끔 하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리임원 소장 순회문학제 참가를 위해 해마다 오는데 눈에 띄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 동양일보에서 명사시낭송회부터 13년째 하는데 저는 두 번째 해부터 매년 오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 해인가 안 온 것 같군요. 처음 명사시낭송회로 조직하고 재작년부터 순회문학제로 바뀌었는데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님도 처음 시작할 때 취지가 분명했습니다. 품격 있는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취지였지요. 여러 해를 오면서 처음보다, 또 지난해보다 충북의 문학적인 시낭송이나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시낭송을 하는 명사들도 어색했고, 관람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도 어수선했었는데 모든 게 자리 잡혀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10년 남짓 해 온 것들이 이제는 결과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문화가 건축 등과는 다른 것입니다. 1~2년 공사해서 되는 게 아니지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 끝에 점차 충북에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했지만 중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시도 심어주겠다고 했는데 길림시에서 오기 전에 명사시낭송회를 했었습니다. 이번에 가서는 축사도 하고 자리도 같이 했었는데 3회째 하니까 이제 틀이 잡히고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 시간만 되면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달라며 시를 읊조리고 싶어 합니다. 시라는 것 자체가 사람 순화도 시켜주는 역할을 많이 합니다.”
 
김 부국장 김 주필님, 개인적으로 글을 많이 쓰실 텐데 문화적인 한국과 중국의 차이가 있나요?”
 
김 주필 어떤 문화적인 일을 할 때 어떠한 알찬 성과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발굴했고 단순하게 이어지면서 하기 위한 행사가 아닌 정말 알찬 성과를 위한 행사지요. 조 회장님 말씀이 시낭송 주인공은 학생 너희들이라고 하시는데 미래를 위한 것, 이런 노력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시낭송이 끝나고 호흡을 논하면서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프로의식이랄까요? 그런 모습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샐 틈 없이 단단하게 짜여 진 행사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를 낭송하는 명사들을 보면서 이 행사의 대단함을 또 느꼈습니다. 도내 각 시·군을 이끄는 사람이 무대에 올랐지요. 지금까지 시·군을 돌면서 1개 지역만 부군수가 참여하고 모두 시장·군수가 나왔는데 이는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물론 중국과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또 동양일보이기에 이 같은 문화행사를 큰 행사로 발전시켜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 부국장 허 시인과 차 기자님은 우리가 중국 초청을 하는데 교류 방안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차 기자 동양일보를 통한 중국 조선족과의 협력을 말씀하신 건가요? 중국 조선족들이 여러 방법으로 한국을 드나드는데, 동양일보에서 하듯 문화교류를 테마로 하게 되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도 이런 교류를 하면서 빨리 문화적 품위를 올려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류는 계몽의 시작이고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말합니다. 좀 더 많은 조선족들이 단순하게 관광으로 한국에 와서 머물다 가는 것 보다 실제적인 이런 문화행사에 함께 참여하면서 익히면 더욱 값질 것입니다. 또 이곳에서 함께 했던 문화행사를 중국에서 해 나가면 조선족 문화가 광범위해지면서 품위까지 높일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연변 포석제는 사실상 조선족 중심인데 중국이란 나라가 원래 땅이 넓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조선족 명사들만 참가할 수 있지요. 문학에 꿈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는 어렵잖아요. 선택된 사람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 연변 포석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변에 국한되지 말고 우리가 이곳에 왔듯 각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교류라기보다 이곳의 행사를 보면서 포석제도 배웠으면 하는 것이지요.”
 
리 소장 연변 포석제를 지역에서 하고 있는데, 중국 전역은 너무 넓어서 모일 수가 없지요.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지역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대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지역적 제한성이 있습니다.”
 
김 주필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생각한 제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교류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연변에도 문화가 국력이라는 개념이 점차 퍼지는 것 같습니다. 연변은 축제 문화가 조금 낡았지요. 이곳은 무척 앞선 문화입니다. 이렇게 앞선 축제문화, 또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축제, 어울리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뒤쳐졌고 어렵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포럼 같은 것을 통해 좋은 경험도 알려주고 가능하면 큰 행사에는 지원자나 도와줄 수 있는 인재도 파견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도 축제를 다니면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합니다. 완전한 한국 것이 아니고 중국으로 가서 현지에 맞도록 하는 그런 것을 말이죠.”
 
차 기자 현 시점에서는 연변 포석문학제가 이제 브랜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다양한 문화적 행사를 펼치는 것 보다는 포석제만이라도 완벽하게 밀고 나가서 확실한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곳에 신경쓰다보면 포석문학제도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점인 만큼 확실하게 뿌리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 부국장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문학의 아쉬움이나 한국과의 교류에 대한 바람들이 있다면.”
 
허 시인 저는 연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과의 교류에 대한 바람이라는 큰 시각적으로 제가 답변하기에는 어려운 질문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은 한국과 중국의 교류에 대한 시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른 분께 넘기겠습니다.”
 
리 소장 예전에 언제인가 한 번 무대에 올라가서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는 한중 수교 20돌이 되는 해지요. 수교 후 동포사회와 한국의 교류가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동포들도 이곳에 많이 나와 살기도 합니다. 주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분들이겠지요. 돈을 벌기 위해 나오기 때문에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제교류나 활성화는 잘 되고 있다고 하겠지만 이제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문화적으로 같은 동족이고 동질성도 같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경제만 됐는데 이제는 문화적으로 다가서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 부국장 순회문학제를 보시면서 느끼는 것들과 중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 하실텐데 조선족 사회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김 주필 익숙한 게 예술이라 별다르게 많이 생각하진 못했는데 시낭송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좋아서 시를 쓰고 읽는데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 이것을 어떻게 줄 수 없는지를 고민해 봅니다. 예술행사를 해도 좋습니다. 사진과 함께 시를 한편 쓰고, 그런 것들을 좀 더 알차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시는 적혀서 문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낭송을 통해 더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순회문학제를 통해 느꼈습니다. 우리도 어색하겠지만 시낭송 등으로 교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허 시인 중국으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다는 것보다 다른 시각으로 말한다면 중국 교포와의 사회교류를 말했는데, 중국과 한국 문화교류, 그것은 드라마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중국에서 즐겨 보지만 배경은 시각적인, 또 오락적인 대중문화라는 생각입니다. 한국문화의 진수를 중국 사람들은 잘 몰라요. 시 문학만이 아니라 여기서 동양일보가 이끄는 방식으로 중국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잘 몰랐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조선족 김송희 시인이 시집 한 권을 줬습니다. 시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재미없다고 느꼈었지요. 아이들에게 그저 좋은 말만 늘어놓는데 심심했었지요. 저는 낭독, 낭송을 좋아해서 해봤습니다. 우리말이 그러한 내제적인 규칙이 있는데 우리말은 시를 통해서, 또 시낭송을 통해서 배울 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우리말의 내재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김정희 선생의 금잔디를 접하면서 아름다움을 느꼈었습니다. 시를 쓰니 참 재미있고 더욱 애착이 갔었지요. 중국 중문자도 대단한 문자이지만 내재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요. 당시 송서를 읽는 사람들만이 중국문자를 알아요. 동양일보의 시에 대한 열정, 이런 것들을 중국이 배워야 합니다. 중국 한족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자에 대한 애착심을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적 경험도 되지요. 중국도 시가문학을 모르면 중국 문자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 문화수준이 높은 분들은 많은데 한자에 대한 애착심은 저보다 못해요. 문자의 아름다움을 잘 체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문자, 언어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아야 다른 예술도 이해를 더욱 잘 할 것입니다. 동양일보가 하는 일이 한국문화와 중국문화 교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부국장 아름다운 말글이 조선족에서 많이 잊혀진다고 하더군요.”
 
리 수필가 앞서 말했다시피 고등학교에서 강의는 한국어 과목 외에는 중국어로 합니다. 학생들의 연습지도 모두 중국어로 돼 있지요. 연변과는 다릅니다. 조선어 시간에도 심지어 중국어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아들이 9살인데 중국어는 대단히 잘해요. 일상생활이 모두 중국어다보니 그렇지요. 그래서 억지로 조선학교에 보냈어요. 한국도 그렇겠지만 중국의 고등 입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선어를 접하기가 더 어렵지요. 한국시를 접해도 내용을 이해 못할까봐 걱정도 듭니다. 시낭송을 통해 자꾸 접하다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낭송을 통해 시인의 마음을 읽고 사상, 감성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요. 큰 소득이 될 것입니다. 이제 돌아가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 시의 내용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려 하지 않고 시낭송을 반복시키면서 시인의 마음을 이해시키면 좋겠다는 것을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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