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양보 없이 치킨게임을 벌여왔던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이 처음으로 주목되는 상생방안을 내놨다. 대형 유통업체 대표들은 22일 지식경제부 중재로 전국상인연합회 및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 대표들과 만나 매달 2차례 이상 휴무하고 신규 출점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1115일까지는 가칭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해 나간다고 한다. 동반성장의 핵심 과제인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의 상생문제를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은 갈등과 반목이 심했던 유통업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이번 합의로 골목상권은 무분별한 기업형슈퍼마켓(SSM) 출점 등에 따른 영업권 침해와 지역경제 황폐화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를 마련했다. 대형마트도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나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양측이 어렵게 튼 대화의 물꼬를 이용해 골목상권을 지키면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최적의 방안으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대형 유통업계가 골목상권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국회에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20여건 발의돼 있다. 일부 대선 후보는 대형마트 입점을 허가제로 바꾸고 휴무일을 늘리거나 영업시간·영업품목을 제한하는 규제까지 고려하겠다고 나섰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도 대형마트에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민생 차원으로 번진 골목상권 문제를 대형 유통업계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앞으로 강제휴무 방법이나 시기 등을 논의해 나갈 협의회의 갈 길은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발의돼 있는 법안에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밤 9~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제한하거나 전통문화 및 자연보존이 필요한 지자체에 대형마트 출점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논의 과정에서 골목상권은 당연히 이런 규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대형마트는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다 보면 협의회 운영이 파행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 지자체에서 양측이 마련한 상생모델을 보면 그렇게 비관적인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경기 파주와 전남 순천 등에서는 휴일이 아닌 평일에 월 2차례 휴무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경기 고양시는 매달 1·15일 쉬기로 합의했다. 대형마트가 월 2회 휴무하되 날짜는 각 지역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정하고 지자체와 골목상권이 동의하는 경우에만 출점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협의회가 구속력이 없다는 핑계로 서로 눈치만 보다가 상생 기회를 잃는다면 밖에서 휘두르는 칼날에 더 깊게 베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