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몇 달 전부터 보는 이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해 살이 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동안 워낙 말랐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남들이 묻기도 전에 체중이 몇 킬로나 늘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뼈만 앙상하던 어깨에 살이 붙었고 얼굴도 부옇게 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 부터는 작아서 입을 수 없는 옷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워낙 몸에 꼭 맞는 옷을 싫어해서 다른 사람보다 옷을 크게 입는 경향이 있는데 그동안 입고 다니던 상의도 꼭 끼어서 불편한 옷도 생기고 바지 같은 경우는 맞는 게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정색을 하고 살펴보니 뱃살이며 허벅지살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루는 동네 병원에 갔다가 체중계가 있기에 슬그머니 올라가 보고 깜짝 놀랐다. 내 평생 최고의 체중이었다. 내 키의 표준 체중을 훌쩍 넘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조절도 하고 군것질, 특히 즐겨 먹는 단 음식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을 찌우려고 별의별 시도를 다 해오던 나였다. 심각하게 말랐을 때는 뼈만 앙상해 체중계에 올라가기가 싫었고 보기에도 흉할 정도였다.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키우며 지나치게 마른 며느리가 보기 싫으셨던지 시어른들께서는 여기저기 좋다는 약을 수소문해 지어다 주셨고 친정 엄마도 너 살 한 번 찌는 거 보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셨다. 언젠가 새벽 친정 엄마는 깊은 산속로 사슴피를 먹이려 데려가기도 하셨고 살찌우는데 용하다는 한의원를 찾아 몇 시간씩 차를 달려 남도의 끝자락까지 간 적도 있다.

깡마른 몸으로 십 수 년 전 애들 둘을 데리고 캐나다 밴쿠버로 떠났는데 반년쯤 지나자 얼굴이 편해지고 살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각박한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풍광이 수려한 캐나다로 나가 마음도 차분해지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자 건강이 좋아진 것이다. 거의 빼놓지 않고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울울한 숲길을 하루에 두 시간씩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혼자만의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지지고 볶고 하던 시간을 돌이키며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고 회한에 잠겨 눈물짓기도 했다.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일이 그토록 가슴 아팠고 객관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외로운 시간을 자연과 벗 삼으며 지내던 시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캐나다는 수려한 자연을 가진 나라다. 그런 대자연속에서 살아온 때문인지 그곳 사람들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다. 자연 친화적이고 소박한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며 금전만능이 팽배한 다른 나라, 특히 한국 같은 곳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행복지수도 높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안정되어 사건사고로 늘 소란스러운 한국과 크게 다르다. 한국처럼 외모에 연연하지 않으며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충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 사는 걸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캐나다에서 보낸 6년은 내 영혼을 정화시키기에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더 나아가 개관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캐나다에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산책을 마음껏 즐겼고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그야말로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들이었다. 캐나다에서 보낸 날들은 심신을 살찌울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캐나다 생활을 잊고 적응을 하려 한동안 애를 썼다. 처음엔 거칠고 소란스런 한국이 싫어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마음을 잡으려 바쁜 생활을 자초했고 새로운 사람들도 다시 만났다. 한국의 자연을 돌아보고 여행을 하며 내 나라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썼다. 마음이 차분해졌고 캐나다 생활이 점차 잊혀져갔다. 여전히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립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에서도 나름대로 행복을 느낀다. 이런 편안함을 느끼며 나날이 건강해졌고 퉁퉁한 중년 아줌마가 되었다. 이제 나는 다른 중년의 아낙처럼 뱃살을 걱정하며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아줌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