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충북 청주시 산남동에 특별한 이름의 고등학교가 있다.

산남고등학교. 이름이 예쁘다거나 역사 문화적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단지 행정동 명을 딴 평범한 이름이지만, 이 학교의 이름이 특별한 것은 전국 최초의 양성평등 교명이기 때문이다.

개교한지 5년이 되는 이 학교가 주목을 받는 것은 여학생들만 모집하는 학교임에도 교명에서 여자가 빠진 것 때문이다.

여자가 빠진 교명의 탄생 순서로 따지면 서울의 오류고(2000년 개교)와 목동고(2005년 개명·전 양천여고)가 먼저 있었지만, 오류고는 설립 당시 남녀공학을 염두에 두고 교명을 지었다가 개교 이래 여학생만 받고 있고 목동고는 남녀공학 전환을 위해 개명한 경우이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에서는 전국 최초임이 분명하다.

산남고란 교명이 탄생하기까지는 충북도교육청의 파격적인 결정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학생들의 의식의 변화가 큰 몫을 했다.

2006년 한 여고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여자고등학교라는 지칭은 성차별이라며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교과부에 진정자료를 전달했다.

충북지역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생 당사자가 여고를 차별이라고 느낀다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때맞게 형성됐다. 그래서 당당한 교명이 탄생된 것이다.

ㅇㅇ여자중학교’ ‘ㅇㅇ여자고등학교’. 과거엔 이러한 교명에 이의를 달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여학생만 모집하는 학교의 교명에 여자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성()을 구분해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구별과 차이를 주기 위한 것이므로 명칭도 그런 구별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분석해 보면 여자가 들어가는 교명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형성된 차별적 지칭임이 분명해진다.

남학생이 있으면 왜 남자고등학교가 아닌, ‘고등학교이고, 여학생만 여자고등학교인가.

성차별적인 언어는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관행이었다.

잘못된 언어 현상임을 알면서도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익숙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습관 속에서 길들여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성을 구분할 때 남성은 대표성으로 지칭되고 여성만 구분한다는 점이다.

작가와 여류작가. 남성 작가는 작가이고 여성작가는 여류작가이다.

판사와 여판사, 선생과 여선생, 직원과 여직원. 직업이나 업무형태와 상관없이 성을 구분할 땐 무조건 여성 앞에만 를 붙여 마치 여성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부수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성차별 언어는 매우 많다.

처음을 뜻하는 말로 처녀의 성적 순결성에 비유하여 접두사 처녀를 붙이는 것. ‘처녀작’, ‘처녀항해등은 언어를 통해 처녀의 성적 순결을 도식화 한다.

미망인이라는 단어는 그 뜻이 성차별적이며, ‘쭉쭉빵빵’ ‘꿀벅지’ ‘S라인등은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한 비하적인 표현이다.

물론 성 차별적 언어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어권에서도 차별의 뿌리가 깊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지속적인 노력으로 성평등 언어를 사전에 올리는 등 언어를 통한 성주류화 운동에 활발하다.

체어맨(chairman)을 체어퍼슨(chairpersun)으로, 인류라는 뜻의 맨카인드(mankind)는 휴먼 카인드(humankind)), 킹사이즈(king size), 퀸사이즈(queen size)는 점보사이즈(jombo-size), 엑스트라 사이즈(extra-large)로 바꿔 사전에 올렸다.

또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신문들은 남성을 Mr. 한가지로 표기하는데 비해 여성은 Miss, Mrs로 결혼을 구분해 표기하는 것을 지양해, 모든 여성을 Ms로 표기하고 있다.

성주류화 시대, 성평등 인식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쓰는 성차별·성비하 표현을 줄이고 성평등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과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산남고등학교의 산뜻한 교명은 아직 첫 발에 불과하지만, 장차 성차별 언어 변화를 위한 환경을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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