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요즘 학교 장학금 가운데 지도교수 추천 장학금이란 것이 있다. 대체로 소득분위와 성적, 그리고 일대일 면담을 통해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어느 학생이 더 절실한지 파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자존심을 중시하며 친구에게 장학금을 양보한다는 학생도 있고 자가용을 여러 대 바꿔 타면서도 점심을 굶고 있다고 엄살을 부리는 학생도 있다. 물론 객관적인 수치에 중점을 두지만, 나는 학생들의 눈빛을 주관적인 판단의 근거에 살짝 집어넣는다. 학생들이 배우를 능가하는 눈빛 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나이 정도의 연륜이라면 학생들의 눈빛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많은 눈빛을 보았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눈빛이 있는데, 그것은 캄보디아의 톤레샵 호수에서 보았던 수상촌 여성들의 치열한 눈빛이다.

지난 해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크메르 루주킬링필드를 떠올리며 편견을 갖고 미루다 더 늦기 전에 앙코르와트를 한번 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과연 앙코르와트는 대단했다. 천년의 이끼가 낀 석조 건축물들의 틈새로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내려 자연과 인공물이 혼연일체를 이룬 장경은 경이롭기만 했다. 무너져가는 건축물의 외부에는 수많은 신들과 무희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벽에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 전쟁, 신화, 전설이 세련된 예술적 양식으로 새겨져 있었다. 12세기에 그렇게 융성했던 크메르 제국이 완전히 몰락하여 정글에 파묻혀 버렸다가 몇 백 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한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참으로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과거와 문화유산을 지닌 크메르 제국의 후손들이 조상들과는 너무도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유적지마다 맨발의 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싸구려 물건들을 팔거나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토록이나 웅장한 사원을 세웠던 우수한 민족이 이렇게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감함을 머금게 했다.

그 다음에 들른 톤레샵 호수 수상촌의 삶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지뢰로 한쪽 팔을 잃고 다른 한쪽 팔로 열심히 노를 젓는 아이와 그 옆에서 온 몸에 뱀을 휘감으며 묘기를 보이고 있는 열 살 남짓한 아이의 모습은 정말 이런 인생도 있나 하는 탄식을 절로 나게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루한 차림의 여인들이 보트를 타고 몰려왔다. 칭얼대거나 잠이 든 어린 아이들을 두어 명씩 태운 채 몰려든 여인들은 관광객을 실은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1달러짜리 지폐 한두 장을 벌지 못하면 아이들이 굶는다는 처절한 눈빛 앞에서 관광객들은 값싼 감상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그네들에게 지폐를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이 자식을 둔 엄마의 심정이라 그럴까. 나는 아직도 그 여인들의 치열하고 절박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관광객들에게 원 달러를 외치고 있는 아이들의 순진한 눈빛과 어린 자식들을 내세워 하루 양식을 구걸하던 젊은 여인네들의 처절한 눈빛은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인도출신의 가야트리 스피박이라는 여성학자는 서발턴(하위주체)도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인도의 하층민 여성이 과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엘리트 서구 남성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톤레샵 수상촌의 가난한 여성들은 스피박이 던진 문제에 바로 그 눈빛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치열한 눈빛에는 그네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무리 문명이 초스피드로 바뀌고 과학기술이 복잡하게 발전해간다 해도 삶의 진실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소박한 인간의 눈빛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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