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수 애충북대 교수


지난 주말 학회가 열리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지하철 입구에서 학내로 들어가는 순환버스를 타야했다. 토요일이어서 거리가 한산할 거라 생각했던 예측은 큰 착오였다. 서울 도착 예정시각이 출근 시간대를 지난 무렵이어서, 대략의 소요시간에 조금 여유를 두고 출발했는데 학회장에 도착한 것은 개회식이 끝나고 첫 번째 주제 강연도 시작한지 20분이나 지나서였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자마자 북적이는 인파로 주변 거리는 꽉 채워져 있었다. 대학으로 들어가는 순환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줄은 하염없이 길었다. 무조건 마지막 줄에 나도 꼬리를 이었다.

그런데 잠시 살펴보니 내가 선 줄은 내가 타야할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아니었다. 버스노선 번호에 맞는 줄을 찾는데도 수 분이 걸렸다.

승객 중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주말을 맞아 학교 주변 산을 오르려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차려입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있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는 차량의 소음을 삼키는 수준이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서로를 찾느라 분주했다. 한참을 기다려 승강장에 도착한 버스를 타려고 사람들은 버스 출입문 쪽으로 줄 간을 좁혀 모여 들었다. 질서를 지켜 차례차례 승차를 하던 중 누군가 줄 뒤에 있던 사람이 쏜살같이 새치기를 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몇 사람이 가세를 하였다. 순식간에 줄 서있던 사람들은 밀쳐져서 버스에 오르지 못했고 버스 출입구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게 되었다. 출입문을 닫지 못해 버스가 출발을 하지 못하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문에 매달린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줄에서 밀려난 사람 중 한사람이 나중에 탄 사람이 내려야 문을 닫고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안쪽에서 젊은이 하나가 내리려 하니 잠시만 내렸다가 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간신히 틈을 비집고 나온 젊은이가 내린 후, 문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다시 승차한 뒤에야 버스가 움직였다. 버스를 탔다가 내린 젊은이는 우리가 서 있던 줄의 앞에 다시 서서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어 가야할 상황도 아닌 듯한데, 그들은 자신의 위험과 다른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위협적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겪고 순환버스로 도착한 학교 입구는 등산인파로 학교 앞인지 등산로 입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예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목적지를 찾아 서둘렀다. 나무들 사이로 불쑥 솟아오른 여러 동의 건물들이 캠퍼스 경관의 아름다움을 잘라내었다. 건물에 동 번호가 붙어있었지만 그 배열에는 규칙성도 없어 보였다.

90번대 건물 옆에 150번 대의 건물이 있고, 조금 떨어진 50번대 건물 근처에 10번대와 60번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동 번호 표시가 길가 쪽에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건물 사이로 잘못 들어서니 미로 속 같아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을 맴돌다 학생으로 보이는 행인을 만났다.

그런데 우연히도 아까 복잡한 버스에서 내렸다가 다시 탄 학생을 만난 것이다. 그에게 다가가 버스 탈 때의 일을 칭찬하며, 내가 찾는 건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쑥스러운 듯 머리를 잠시 극적이던 학생은 내가 찾는 동까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그는 자세히 보니 생김도 매우 반듯해 보였다. 건물 찾기가 힘들 거라며, 지금 이와 관련된 조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회에서 지정해 준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은 맑고 푸른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교정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소풍 나온 가족들, 체험학습을 하러온 청소년들, 심지어 휴대용 스피커를 든 안내자를 따르는 관광객들도 섞여 있었다.

입학생 수는 점차 줄어든다고 하는데 대학들마다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건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신축건물이 절실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자연과의 조화를 더 고려하고, 건물명 배치나 학내 안내지도를 외부인도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지역사회에 대학 시설을 개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습과 연구를 방해하지 않도록 보다 정숙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내외 시설을 활용하는 시민들도 성숙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떠들썩한 캠퍼스 외곽 분위기가 마음에 거슬렸지만,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읽고 사회트렌드를 파악하는 사회이해의 새로운 방법에 관한 흥미로운 강의와, 곱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며 마음을 살찌운 멋진 10월이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