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 근 취재부 기자

 

지난 29일 오전 충북지방경찰청 브리핑실에 인감증명 등 각종 서류와 휴대전화, 신용카드들이 널려 있었다. 대출중개를 빙자해 대출신청자의 명의로 신청서를 위조한 뒤 대출금을 받아 챙긴 대부중개업자 송모(38)씨로부터 압수한 물품이다. 휴대전화만 71대, 현금(신용)카드와 금융보안카드는 130여개에 달했다.

버젓이 상호를 내걸고, TV에 광고까지 하는 유명 대부업체에 대출을 소개해주겠다며 당당하게 위조된 대출계약서를 내놓는 송씨의 간 큰 행동에 피해자들을 알고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2년간 이 중개업자에게 속은 피해자만 43명. 횟수는 170회가 넘고 피해액도 5억6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12건의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사기행각을 벌였다.

사기의 가장 얄미운 점은 ‘돈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사기범들에게 돈을 넘긴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눈 뜨고 당하는’ 꼴이다.

그가 이처럼 간 크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서민들의 소액대출이 힘들어진 탓에 중개업자의 의존도가 높은 탓도 있다.

각종 금융사기가 잇따르자 은행들은 “금융사기를 예방하겠다”며 인터넷·스마트폰 뱅킹 대출을 아예 막고, 카드론 서비스 대출의 경우 절차를 까다롭게 변경했다. 은행권 소액대출이 힘들어지자 서민들은 대부업체로 눈을 돌리게 됐다.

문제는 대부업체 대부분이 중개업자를 통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 ‘러시앤캐쉬’, ‘산화머니’ 등 유명 대부업체도 지역까지 영업력이 미치지 못해 중개업자를 이용하고 있다. 영업경쟁이 치열한 대부업자의 입장에서도 중개업자가 중간에서 장난(?)을 치더라도 계속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액대출의 경우 금융당국이 무조건 대출을 막거나 절차를 까다롭게 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대출서비스 이용자들도 마찬가지. 자신의 손으로 ‘명의’나 ‘비밀번호’ 등 정보를 건네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사기범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무엇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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