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된 라면 및 조미료 제품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자진 회수 결정을 둘러싸고 여론의 질타가 매섭다.

문제 제품에 대한 식약청의 조치가 나오자 대만과 중국 당국이 제품 회수 결정을 내리는 등 국제적으로도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아직은 대만과 중국에서만 공식적인 회수 결정이 내려졌지만, 일본도 수입업체에 자진회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 생산업체의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한국산 가공 식품 안전성에 대한 신뢰 추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체에 위험하지 않다고 밝혀오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회수 결정을 내린 식약청이 자초한 일이다. 무원칙 행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번 파문의 발단은 식약청의 최초 조치에서 비롯됐다. 식약청이 지난 6월 벤조피렌 기준을 초과한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가 들어간 라면 제품의 수프를 조사한 결과, 9개 업체 30개 수프에서 1.2~4.7ppb의 벤조피렌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청은 당시 검출농도가 인체에 해가 없다며 회수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검출 사실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1023일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하루 만에 자진회수 결정을 내렸다. 식약청장이 자진회수 결정을 표명했던 그날 오후까지도 인체에 위험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진 회수 형식의 조치를 취했다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면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밝히면서 과학적 근거를 소상히 제시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도 필요했다.

식약청의 회수 방침이 처음 전해진지 하루 만에 대만 보건당국은 문제의 한국 라면 2개 제품에 대해 회수 결정을 내렸다. 중국 검역 당국도 다음날 자국 수입상에 대해 문제가 된 한국산 6개 제품에 대해 즉각 회수를 명령했다. 대만 등 일부 수입국의 매장에선 자체 회수에 들어갔거나 이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적 파장이 우려되는 것은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되는 라면 제품 제품뿐 아니라 한국산 가공 식품 안전성 전반에 대한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식약청의 오락가락 행정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중국산 합성수지제 젓가락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는데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문제가 됐다. 2010년에는 비만 치료제 시부트라민에 대해 부작용 우려가 없다며 시판 유지 결정을 내렸다가 미국 보건 당국 등의 시판 중지 결정이 나오자 세 달 만에 국내 시판 금지 조치를 취해 안이한 대응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식약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업무 처리 지침 개선, 업체 품질 검사 강화, 위해사범 조사단 쇄신 등의 조치를 강구중이라고 한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 식품의 안전을 책임진 식약청이라면 이보다 먼저 국민의 혼란과 불안을 부추기는 일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안전성 검사를 철저히 하고 여기서 나온 결과는 신속하고 정확히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결과에 따른 행정처분이나 소비자 안전 조치는 최신 정보와 과학적 분석 결과를 근거로 소신 있게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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