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지상파방송사의 오랜 숙원이었던 종일방송이 마침내 허용되었다.

지난 9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상파채널의 방송시간 자율화를 결정함으로써 하루 19시간으로 제한되었던 지상파채널의 방송시간이 10월부터 24시간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와 채널의 잇따른 등장으로 위기를 느낀 지상파방송사들은 유료매체와의 규제 불균형 해소와 심야시간 취약계층에 대한 시청권 확대를 명분으로 방송시간 자율화를 요구해왔다.

지상파채널의 방송시간 자율화는 시청자들의 생활패턴 변화를 고려할 때 필요한 정책이기는 하나 다소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이들이 직접 운영하는 케이블채널의 작년 시장점유율이 전체 방송시장의 74%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경영상태가 아직 취약한 유료방송채널과의 규제 불균형을 해소시켜 달라는 지상파방송의 요구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추진됐던 영업시간 규제에 대한 대형마트들의 몰염치한 저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종일방송 허용의 또 다른 명분인 심야시간 취약계층에 대한 시청권 확대는 어떠한가?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지상파의 방송시간 자율화로 TV시청시간이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늘어난 방송시간에 어떤 내용의 프로그램이 편성되는지,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은 어떤지에 대한 분석 없이 단순히 시간이 늘었다고 시청권이 확대됐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의원(민주통합당)지상파방송사가 시청자들의 시청권 확대를 위해 종일방송을 주장하고 있지만 2005년 낮방송 시간 허용 때도 같은 논리를 폈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낮시간대 재방 비율이 50-80% 수준으로 시간만 늘어났을 뿐 시청자들의 시청권이 질적으로 확대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를 우려한 방통위는 심야시간대 전체 방송시간 중 재방송 비율은 40%, 19세 이상 시청가능 프로그램의 방송비율은 20%를 넘지 못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이는 강제성이 없는 권고로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지상파채널 중 가장 먼저 종일방송을 시작한 KBS 1TV의 지난 주간 심야편성을 보면 ‘KBS 걸작다큐멘터리‘KBS네트워크의 재방송과 일부 스포츠경기의 녹화방송이 대부분이었다.

오전 5시에 KBS뉴스가 10분간 방송되고 곧이어 내고향 스페셜이 편성되었다. SBS는 지난 주 가을개편과 더불어 24시간 방송을 시작했지만 심야시간대의 편성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평일에는 드라마 대풍수와 예능 프로그램을 재방송했고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3시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한 로드 투 평창이 신설되었을 뿐이다.

오전 510분 신설된 굿모닝510’의 방송내용은 이미 방송한 백세건강 스페셜’, ‘감성여행 쉼표’, ‘지식나눔콘서트등의 재방송이었다.

21시간 방송체제로 변경한 MBC도 심야시간에 5분짜리 편성물 행복한 시간, 을 제외하고는 심야시간대에 특화된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방송시간 자율화에 대해 사실은 아무런 대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

종일방송을 하려면 당연히 그에 적합한 재원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늘어난 방송시간, 그것도 심야시간에 특화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는 인력 보완은 필수적이다.

그래야 밤새도록 온갖 싸구려 프로그램을 재탕 삼탕하며 낭비 방송를 일삼는 케이블채널을 정화시킬 수 있는 공익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정작 당사자들은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방송시간 자율화를 허용했으니 누가 봐도 대선을 앞둔 정권 말의 선심성 낭비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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