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입체적 캐릭터 등장

권선징악 구조 쇠퇴캐릭터 내적 갈등에 묘미

SBS TV 주말 드라마 다섯손가락’. 악기 회사를 모 기업으로 하는 재벌가의 암투를 그려낸 드라마에서 중심적인 갈등 선은 계모 채영랑 회장(채시라 분)과 배다른 첫째 아들 유지호(주지훈).
영랑은 남편이 바깥에서 낳아 데려온 지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신의 친아들 인하(지창욱)에게 회사를 물려주고자 지호에게 횡령, 표절 심지어 살인 누명까지 씌우는 등 온갖 계략과 음모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 바람기 잘 날 없던 남편, 끊임없이 괴롭히는 시어머니 아래에서 지낸 것도 모자라 지호가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된 상황은 그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처럼 최근 드라마는 악역의 배후에 있는 절절한 사연을 전함으로써 이들을 단순히 악역으로 몰아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권선징악이라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깨뜨리며 과연 선악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 것.
다섯손가락에서는 영랑이 지호에게 등을 돌리기에 앞서 그의 굴곡진 인생사가 압축적으로 설명됐다.
영랑의 악행마저도 친아들을 향한 그의 모성 때문에 그 정도가 희석되는 것.
실제로 지난 8월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채시라는 영랑 역할을 두고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이럴 수밖에 없었구나하고 이해가 가는 선악이 모호한 여자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밖에도 KBS 2TV의 주말극 내 딸 서영이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를 저버린 딸의 고뇌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예전 같으면 패륜아로 치부됐을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촘촘하게 묘사하며 시청자의 공감을 십분 이끌어낸다.
KBS 2TV 수목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악역 한재희(박시연)도 마찬가지. 자신이 저버린 남자 강마루(송중기)의 복수의 칼날 앞에서조차 사랑을 구걸하는 그의 애처로운 모습은 인과응보를 넘어서 연민을 자아낸다.
예전 같았으면 악역으로 손가락질 받았을 이들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시청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드라마의 이러한 흐름은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면면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100% 악한 사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묘사해야 이야기의 개연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태양의 여자의 신도영(김지수) 등 그 인물이 그렇게 악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극 안에서 구축됐다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런 개연성을 만들어주면서 악역 캐릭터가 변화됐다고 분석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