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여전히 단풍이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시월 말 우연히 황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문화탐방의 일환으로 청주에서 출발하는 코스였다. 황산이 좋다는 말은 여러 차례 들은 바 있고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지도 오래 되었고 요즘 들어 어딘가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다. 오랜 친구가 방송사를 대표하여 동행한다고 하니 더 마음이 끌렸다. 그 친구는 중국어에 능통하고 학구적이라 함께 여행을 다니면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창에 사는 친구에게 함께 갈 것을 제의하자 흔쾌히 동의했고 그녀의 다른 친구들도 가겠노라고 했다. 출발 일주일을 남겨두고 결정한 여행이라 모든 일이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중국 여행이라면 몇 년 전 북경일대를 다녀 온 적이 있고 작년에는 홍콩과 심천을 다녀온 바 있다. 두 번 모두 즐겁고 만족스런 여행이었고 여전히 중국은 배우고 여행할 곳이 많은 나라라는 걸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시월의 끝자락 우리 일행은 청주공항에서 모여 비행기를 탔다. 비행시간이 한 시간 반밖에 되지 않아 마음이 가벼웠고 청주에서 출발하니 모든 면에서 편했다. 울긋불긋 나들이옷을 입은 오십 명의 일행이 모였고 간단한 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을 먹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재잘재잘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덧 항주 공항에 도착했다.

항주가 규모가 큰 경제도시라는 얘기는 이미 들은 바 있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우뚝우뚝 솟은 빌딩숲이 역시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가 있는 황산까지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남짓 가는 동안 삼십대 초반의 남자 가이드가 우리에게 유용하고 재미있는 각종 정보를 전해 주었다. 조선족이며 한국인 4세라는 가이드는 약간 한국어가 어눌한 부분이 있었지만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황산 시내에 자리 잡은 호텔에서 밤을 보내고 이튿날 삼청산을 향해 떠났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여행하는 5일 내내 비가 올 것이라고 해 걱정이 됐는데 마침 날씨가 화창하여 기분이 좋았다. 가파른 계단이 많다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 일행은 산 입구에서 원주민 할머니에게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스틱을 사 들고 산행길에 올랐다. 젊어서는 산을 좋아해 한 달에 한번 꼴로 한국의 명산을 찾아 다녔는데 십 여 년 전 캐나다로 떠나며 산책이 일상이 되었다. 평지만 주로 걷다 오르막을 오르려니 다소 힘이 들기도 했지만 걷는 걸 워낙 좋아해 아무래도 좋았다.

금사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해발 1600m 둘레 3600m의 고공잔도(棧道)에 이르렀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보코스이고 보기 드물게 탁월한 설계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왜 삼청산이 도교의 원산지며 신선이 노니는 산이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허공에 걸려있는 기암괴석이 너무도 신묘함을 자아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높은 절벽길을 다듬어 포장을 하고 촘촘이 나무계단을 설치하느라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신선이 된 듯 오래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이튿날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는 황산 풍경구를 향해 떠났다. 이미 여러 차례 화가 친구의 말을 통해 황산의 아름다움을 익히 들은 바 있고 그의 스케치를 통해서도 황산을 접한 바 있어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이날도 날씨가 화창하여 등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황산에 올랐다.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이 이미 예사롭지 않았다. 가파른 기암괴석에 드문드문 소나무가 피어오른, 그야말로 동양화에서 익히 보던 풍경이었다. 왜 동양화에 이런 풍경이 많이 등장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굽이굽이 산길을 돌 때마다 아름다운 비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에 살며 여러 차례 록키를 찾은 적이 있는데 록키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적인 비경을 간직한 황산의 산봉우리들을 보니 자연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졌다. 이튿날 항주로 가 중국 십대 관광지로 꼽히는 서호에 들러 유람선을 타며 북송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심신을 정화시킬 수 있었던 의미심장한 가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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