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 한국가족을 그린 4가지 옴니버스 영화 ‘가족시네마’

 

 

‘가족시네마’라는 제목은 따뜻한 영화일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전통적으로 가족이란 단어는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넉넉한 공간, 마지막에 돌아갈 수 있는 종착지 같은 의미를 내포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가족이 더이상 그런 의미를 지탱하지 못하게 한다. ‘핵가족’이란 개념이 정착된 지 오래지만, 이제 그 작은 단위마저도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군가를 부양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이 모든 것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세상이다.

8일 개봉한 영화 ‘가족시네마’는 지금 이 시대 한국 가족의 슬픈 자화상을 그렸다.

영화는 단편 네 개로 이뤄진 옴니버스 구성이다. 신수원 감독의 ‘순환선’, 홍지영 감독의 ‘별 모양의 얼룩’, 이수연 감독의 ‘E.D.571’, 김성호 감독의 ‘인 굿 컴퍼니’다.

신수원 감독의 ‘순환선’은 실직한 가장이 매일같이 출근해 지하철 순환선을 타고 돌며 겪는 일들을 그렸다. 중년으로 접어든 남자(정인기 분)는 늦둥이 아이를 가진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남자는 그런 아내에게 실직 사실을 말하지도 못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영화는 남자가 마주한 현실이 점점 더 끔찍한 공포로 목을 죄어오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지하철에서 아기를 안고 ‘앵벌이’하는 여자에게 괜히 화를 내는 장면은 슬프게 다가온다.

이렇게 비루한 현실에도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를 따라 순환선처럼 계속 반복된다. 가족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순환선’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프랑스 비평가협회가 주관하는 중단편 경쟁부문의 카날플뤼스(Canal+) 상을 받았다.

김성호 감독의 ‘인 굿 컴퍼니’도 눈에 띄게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는 한 작은 회사에서 임신한 여성 직원이 권고사직 형태로 해고당한 사건을 두고 부당 해고 여부를 가리는 조사 내용이다. 관련 직원들의 인터뷰 내용을 잇대어 다큐멘터리 느낌을 준다.

대기업과 중요한 거래를 따내기 위해 밤샘 근무가 반복되자 팀장(이명행)은 사장의 지시로 임신한 여직원에게 사직을 종용한다. 이에 동료 여직원들이 반발해 일을 안 하겠다며 연대의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팀장의 분열 조장으로 직원들은 결국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등을 돌리고 부당 해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처리된다.

직원들 각자가 자신의 이익과 가족만 챙기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사이 팀장의 아내가 어딘가에서 부당 노동 행위로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되고 과장은 야근 때문에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데려오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개개인은 서로가 맞물린 구조 안에서 변화와 개선을 꾀하기보단 눈앞의 이익에 안주하고 사회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잔인한 노동의 현장이다.

영화는 빠른 리듬으로 저마다의 사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이며 여성들이 노동과 육아 사이에서 고통받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E.D.571’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서른아홉 살 골드미스(선우선)가 어느날 생물학적인 딸임을 주장하며 나타난 열두살 여자아이와 벌이는 격렬한 싸움을 긴장감 있게 그렸다. 역시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유치원 캠프 화재로 딸을 잃은 엄마(김지영)의 이야기를 담은 ‘별 모양의 얼룩’은 부모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씨랜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대형 참사가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 유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여준다.<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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