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밴쿠버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 차 안에서 라디오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가 코리안 버스 투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처음에는 버스로 캐나다 로키 산맥을 둘러보는 관광 안내인가 했는데, 엉뚱하게 한국여성들이 밴쿠버로 들어와 출산을 하는 원정출산(birth tour)에 관한 내용이었다.

캐나다가 워낙 불법 이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앵커우먼은 뭔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앵커는 한국여성들이 밴쿠버에 들어와 출산을 하여 아기의 캐나다 시민권을 받아가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리포터가 한국여성들이 17000달러에서 22000달러에 이르는 패키지 상품으로 원정출산을 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기가 나중에 성장하여 캐나다로 유학을 올 경우 학비를 내지 않거나 싸게 할 수 있고 또 아들이면 캐나다 국적을 선택하여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앵커우먼은 그로 인한 캐나다 측의 손해는 무엇인지 또 한국 내의 반응은 어떠한지 물었다. 리포터는 현재 캐나다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으며, 한국은 빈부격차 등의 사회문제가 조금 제기되고는 있지만 별 탈이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앵커우먼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볼멘소리로 동석한 이민변호사에게 이것이 불법이민에 아니냐고 따져 물으며, 캐나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한국 내의 문제점 등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변호사는 불법이라 할 수 없으며, 외국인이라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2000달러에 이르는 병원비를 벌 수 있으니 오히려 병원에 수입이 되고, 또 모텔 등에 묵으며 돈을 쓰니 캐나다로서는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 볼 건 없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20년 후에 이민 양태가 어찌 변할지 모르지만 현재 캐나다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이므로 캐나다로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덧붙이며, 한국 내의 반응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국 사회까지 모니터링하고 관심가질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앵커우먼은 여전히 뭔가 억울하다는 어조로 코리안 버스 투어를 고발하듯이 보도한 후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인이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었다. 캐나다는 별다른 산업이 없는 나라이지만, 이민사업과 관광사업 또 영어사업을 통해 투자이민부터 어학연수생, 조기유학생,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한국인이 가져와 캐나다에서 쓰는 엄청난 액수의 외화를 보며 마음이 불편하던 참에, 무슨 불법이민이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공영방송에서 코리안 버스 투어를 문제 삼는 것이 무척 못마땅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조공을 바치듯이 캐나다로 몰려오는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외국인학교 문제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었지만, 재벌가 며느리 등 부유층 여성들이 위조여권이나 위장결혼 등을 통해 가짜 외국 국적을 만들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 엄연한 범법행위였기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외국인학교가 다문화학교였으면 상류층의 의미 있는 행동으로 칭찬을 받았겠지만, 외국인학교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학비가 일 년에 이삼천 만원이 넘는 귀족학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부 엘리트 계층에서 여전히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켜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시키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 미국시민권이나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것이 하나의 계급장이 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엘리트 코스는 상당히 배타적이며 세습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 등이다. 이렇게 성장한 엘리트들이 과연 앞으로 사회와 국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자부심과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미래 사회에 어떤 역할을 맡아 나갈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자식의 교육을 고민하는 모든 부모들은 앞으로 아이에게 확고한 정체성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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