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진 청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장

 

낙엽이 수북이 덮인 보드랍고 탄력 있는 땅에 발을 내딛는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솔향기가 더욱 진하다. 가을 숲에서 공명의 모멘트를 제공해주는 자유롭고 담담한 바람은 지휘자로 손색이 없다.

오랜 세월 풍상을 마다하지 않은 노송(老松)의 인자한 웃음소리, 욕심을 내려놓는 낙엽의 소리, 낙엽층 저 밑에서 서로를 이어주고 세대를 이어주는 소리, 자신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치유하는 생명을 내뿜는 소리들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야를 옮겨본다. 단아하고 소박한 빛깔의 단풍들이 서걱서걱 몸을 부대끼는가 싶더니 툭! 툭! 인간의 속기(俗氣)마저 털어 버린다. 적절한 크기와 힘의 조절, 밀고 당기는 강약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표현, 뭔가에 끌리게끔 하는 호소력 짙은 언어로 급기야는 내 숨소리마저 흡수해 버리고 만다.

가을 숲은 그렇게 제 안에서 운명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생명의 안전망을 이루며 공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존을 통해 숙연하고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여! 한때 우리의 자리는 컸고, 당신들의 자리는 작았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큰 민족이 되었고 우리는 이제 겨우 담요를 펼 자리만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네 종교를 우리에게 강요하려고 합니다. 형제여! 우리는 당신네 종교를 파괴하고 싶지도 않고, 그 종교를 당신들에게서 빼앗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의 것을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세네카 족의 추장 ‘붉은 윗도리’는 크리스트교를 강요하는 백인 앞에서 이렇게 평화와 공존의 지혜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을 앞세운 백인들은 끝내 이런 요구를 거절하고 침략으로 인디언의 삶을 부정하였다. 인디언들은 결국 뿌리가 뽑히고 전통을 잃은 채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지만, 자연과 함께하고 차이를 인정하려는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전해준다.

위대한 성인(聖人)의 삶이나 철학자들의 사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눔과 공존이 있는 가을 숲의 세계와 공존을 꿈꾼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환경과 배경에 따라 다른 문화를 지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간다. 개인은 각자의 개별적 삶을 살아가고 그 하나하나의 삶이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변화가 일면서 갈등이 심화 되고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특정 집단들은 자신만이 옳다는 고착된 관념으로 편견을 부추기고 상호의존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어 단절의 벽을 쌓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공존의 가치보다 눈앞의 이익을 내세워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모든 존재가 하나의 에너지로 묶여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공생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역행하고 있다. 모두의 소망을 뒤로하고 오랜 세월을 가로지르는 나눔과 공존의 아름다운 진리를 견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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