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후보단일화를 위한 룰협상이 개시 하루만인 14일 궤도를 이탈했다. 안철수 후보 측은 민주통합당의 승리만능주의협상태도와 장외 매터도 흘리기 의혹 등을 제기하며 협상의 잠정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이 의도적으로 안철수 양보론을 퍼트리고,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지방조직을 통한 노골적인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신뢰를 해치는 비신사적인행위가 시정되고, 관련 당사자들이 사과를 해야만 협상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게 안 캠프의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 6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처음으로 만나 후보단일화에 대한 선 굵은 합의를 이끌어낼 당시의 화기애애함은 어느새 살풍경으로 바뀌었다. 쾌도난마식의 합의도출은 어렵더라도 얼굴을 붉히며 종주먹을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룰협상이 장외 변수의 영향을 받으면서 안철수 캠프가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 협상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특히 민주당이 문재인 후보 쪽으로 급속히 쏠리기 시작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안철수 양보론을 띄운 것이 안철수 캠프의 불신감을 키웠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안 후보 측은 민주당이 보여준 일련의 언행을 정권교체의 대의를 잊은 채 오직 단일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나쁜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듯하다.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결과에만 연연해 이기는 후보는 대선승리를 할 수 없다는 안 후보의 언급에 이런 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협상 보이콧이라는 극약 처방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실력행사에 다름 아니다. 문 후보 측이 조속한 협상재개를 원한다면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로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불편하게 했다면 대신 사과한다는 문 후보의 짤막한 입장표명으로 수습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그렇다고 안 후보 측을 마냥 두둔할 일도 아닌 듯싶다. 만일 안 후보 측이 순식간에 열세로 돌아선 여론의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 기성정치인 뺨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지지자들의 성원을 잃는 것은 물론, 구태정치라고 몰아붙이는 새누리당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방어선도 지켜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야권후보단일화의 협상시한은 대선후보등록일(1125~26)까지다.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자진해서 흔쾌히 합의한 시간표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양쪽이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특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정부를 분점할 가능성이 있는 두 세력이 초보적인 신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으르렁대는 현실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영화의 속편은 대체로 원작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2002 후보단일화의 속편 격인 이번 단일화 협상은 그래서 업그레이드된 감동과 흥미를 주지 못하면 관객인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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