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말 한 마디에 200만 당원을 거느린 공당인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를 위해선 민주당의 내부 인적 쇄신과 구태 정치를 벗어야 한다며 단일화 논의 중단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겼다. 민주당은 당초 안 후보가 내부 인적쇄신 문제를 들고 나서자 우상호 공보단장은 "우리를 구정치세력으로 규정한 건 모욕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새 정치는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누구는 낡은 정치, 누구는 새 정치로 편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 후보가 정치 쇄신을 말할 만한 사람인가", "김정일이 원하는 게 뭔지만 알면 문제가 다 풀린다고들 했다. 뭘 원하는지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안 후보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빗대 비난하는 등 당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단일화 논의 자체가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당내에서도 당의 자존심까지 내던지며 단일화를 구걸할 필요가 있느냐는 자괴감도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당내 기류는 며칠만에 지도부 총사퇴로 반전됐다. 이해찬 대표는 "오직 정권교체와 단일화를 위한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며 "많은 분들이 사퇴 요구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말렸지만 정권교체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민주당을 구태정당으로 지목하고 청산 대상으로 모는 것은 두 분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인 만큼, 안 후보도 그 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민주당의 행태는 사실상 안 후보가 구태정당으로 규정한 민주당의 현실을 자인한 꼴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200만 당원을 거느린 공당이 당원도 아닌 개인의 말 한 마디에 인적쇄신과 구태 청산을 선언한 것은 민주당 스스로 안철수를 ‘주군’으로 모시겠다는 항복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적 가치나 신념도 내팽개친 채 오직 정권 쟁탈만을 위한 ‘안철수당’으로 전락한 셈이다. 정치논리적으로도 정당은 정치적 신념과 노선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권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를 적용해도 민주당은 더 이상 정당으로서 존립가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원도 아닌, 한 개인의 말 한마디에 정당의 자존심과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정당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당원들의 의사 결정 과정도 없이, 지도부 독단적으로 내린 이번 결정이 대선에서 승리가 아닌 패배로 돌아올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안 후보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것인가. 적어도 정치적 신념과 확고한 가치를 지닌 공당이라면 ‘정치적 자존심’만은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민주당 스스로 내팽개친 ‘정치적 자존심’이 대선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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