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투자 영화 아니면 상영관 잡기도 힘들어

대기업들이 장악한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 속에서 작은 영화들이 교차상영으로 푸대접받으며 개봉하자마자 운명을 다하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교차상영이란 영화관의 한 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지 못하고 띄엄띄엄 상영되는 것을 말한다. 영화계에서는 퐁당퐁당이라 일컫는데, 그마저도 가장 이른 시간대와 자정이 넘은 시간대로 밀리는 경우가 문제다.

최근 교차상영으로 논란이 된 터치의 경우 개봉 첫 주 주말인 지난 11일 상영관수가 87개 관이었는데, 상영회차는 203개 관이었다. 한 영화관에서 세 차례도 채 상영되지 못했고 그마저도 아침과 자정 안팎의 시간대가 대부분이었다. 일요일 아침이나 늦은 밤에 영화를 보는 관객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객과 만날 기회 자체가 불공정하게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지난 15일 이런 현실을 비판하며 스스로 종영을 선언하고 영화진흥위원회에 CGV 등 대기업 영화관의 불공정 거래를 신고했다. 민 감독은 대기업 영화관들이 표준상영계약서를 지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앞서 정부(영진위)는 지난 7월 영화계, 대기업과 함께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을 만들어 저예산 영화에도 최소 1주일 이상 상영기간을 보장하고 배급사가 합의하지 않는 이상 교차상영 등 변칙적인 상영을 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표준상영계약서를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터치의 사례에서 보듯 현실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표준상영계약서 자체가 권고안에 그쳐 강제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저예산 영화들은 여전히 개봉 첫 주부터 교차상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을 관계에서 확고한 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 영화관이 소규모 배급사에 일방적으로 교차상영을 통보해도 배급사 쪽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을 막고 영화산업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대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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