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이십 구년 전 갓 낳았을 때, 함초롬하고 예쁜 모습으로 엄마에게 경이로운 감동을 선사한 우리 진영이가 어느새 결혼을 하게 되었구나.

널 낳았다는 소식에 할아버지께서는 병원에서 환자를 보시다 말고 환자 손을 덥썩 잡고 나 손자 봤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셨단다.

얼마나 기쁘셨으면 남들 다 보는 손자를 보셨다고 그토록 좋아하셨을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평소 근엄한 모습으로 계시다가도 너와 진수를 보실 때면 그토록 환하게 희색이 만면해지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은 차라리 감동적이기까지 했지.

그동안 네가 우리 가족, 특히 엄마 아빠에게 준 기쁨을 어찌 다 말로 하겠니.

네가 네 살적인가 엄마가 온갖 감정을 동원해 엄지공주 동화를 들려줄 때 입을 비죽이며 울던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웠던지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네가 네 살 때 한글을 깨우치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쓴 시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진영이가 캐나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던바 거리 아파트에서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하던 일도 엄마의 소중한 추억이다.

산보에서 돌아오던 길에 저 멀리서 들리던 네가 연주하던 감미로운 오보에 음색은 이역에서 외로움으로 가득하던 엄마의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하여 이번 네 결혼식 때 현악 합주단에게 그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 해 두었다.

오랜 외국생활을 하면서 의젓하게 전문가로서 자리를 잡고 그토록 총명하고 마음이 여려 엄마 아빠를 참 기쁘게도 해 주었는데 어느새 일가를 이루다니 실로 감개무량하다.

여전히 엄마에겐 어린애처럼 여겨지는데 이젠 어엿한 성인 대열에 들어섰구나.

캐나다에 있는 네게 전화 버튼을 누를 때 조차 가슴이 벅차오르고 전화를 통해 네 목소리를 들을 때도 내 마음은 설렌다.

언제나 너는 엄마에게 눈부시도록 빛나는 아들이었고 기쁨이었고 자랑이었다.

이제 결혼을 하면 우리 진영이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거야. 요코를 아내로 맞이하여 한 가정을 이룬 것이지. 지난 봄에 왔을 때 너희 둘이 오순도순 잘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엊그제 너희 둘을 만난 주례 선생님도 그러시더구나.

그토록 사랑스런 커플을 본 적이 없다고. 늘 환한 모습으로 전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인 요코를 보고 어느 누가 사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않겠니. 엄마 또한 너와 요코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평생 그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함께 지낼거라 믿는다.

요코의 한없이 상냥하고 지혜롭고 검소한 점을 진작 알아보고 진영이가 아내감으로 생각한 것은 우리 진영이 또한 그만큼 지혜롭다는 뜻이라고 믿는다. 엄마 아빠도 요코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다. 요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가끔씩 보고 싶기도 해. 너무도 환하고 순수해 차라리 광채가 나는 요코가 너랑 딱 맞는 인연이라 생각한다.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잘 살렴. 인생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렴. 앞으로 엄마 아빠는 우리 진영이와 요코가 예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

젊은이들을 위해 어느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이 있더구나. 참 의미심장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어찌 천 번만 흔들려야겠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련의 시간을 거쳐야 참 어른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 너도 경험해 보았듯이 삶이란 희노애락 모두를 포함한 여정이 아니겠니.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살다보면 남보다 훨씬 지혜롭게 삶을 대처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하는 나의 아들 진영아, 엄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이 무엇이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너의 엄마로의 삶을 살아간 것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할 거야. 너와 함께 보냈던 지난 날들이 한없이 소중하고 한없이 그립다.

아울러 이미 세상을 뜨셨으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언제나 널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생각하렴. 엄마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모쪼록 우리 진영이와 요코 하루하루, 매 순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렴. 진영의 결혼식에 앞서,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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