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정부 재정이 들어갈 법률안들이 무더기로 국회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대선을 앞두고 지역구민과 이익단체의 표를 겨냥한 선심성 법률안들이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따져 봐야 할 민감한 법률안들이 어수선한 대선 정국을 틈 타 국민의 눈을 피한 채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어 그 부작용이 자못 우려된다.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법과 대중교통법, 산업입지법, 도로법,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을 포함해 8개 법률안은 이미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이다.

18대 국회 때 해당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했던 재탕, 삼탕 법률안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국회 국토해양위가 지난 15일 통과시킨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법 개정안은 민간이 정부 지원 자금을 받아서 임대주택을 완공했거나 건설하던 중에 부도가 나면 세입자의 임대보증금을 정부가 전액 책임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증금 보장보험 미가입 임대주택은 전국적으로 135000 가구에 이른다.

가구당 보증금을 8000만원으로 잡아도 정부가 11조원을 떠안아야 한다.

특히 이 법안은 국토해양위 소위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유보했는데도, 충청권 출신 여야 의원들의 주도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기습 상정해 처리했다고 한다.

나라의 곳간과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 파렴치함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택시를 대중교통에 넣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도록 한 대중교통법 개정안과 지자체가 맡던 국가산업단지의 유지·보수비용을 국가로 넘기는 산업입지법 개정안, 시 관내 국도의 관리청을 지자체에서 국가로 바꾸는 도로법 개정안, FTA 이행으로 생긴 순이익 중 일부를 환수해 농어업인에게 지원한다는 FTA농어업인지원법 개정안 등에도 엄청난 재정이 소요된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8개 법안만 해도 10조원 가량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이런 식으로 재정에 부담을 주는 선심성 법안들이 5060개에 이르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김황식 총리가 일부 법안은 원칙에 어긋나거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등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경고하고 나섰을 정도이다.

국가의 재정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이뤄져 있다.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이 아니다. 막대한 재정 투입이 뒤따르는 민감한 법안들은 사전에 철저하게 심의가 이뤄지고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전 세계가 재정위기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재정 건전성 확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국회가 이렇듯 마구잡이로 선심성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것은 무책임할뿐더러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여야 원내지도부의 현명한 처신을 기대한다. 정부도 손을 놓고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더는 국민을 절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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