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식 청주 운호고 교사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반이었던 제자 아이가 졸업한 반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친구들의 시기와 부러움, 축하를 한 몸에 듬뿍 받으며 교직 생활을 하는 예쁜 신부를 맞이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넉넉하지 못한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왔고, 저녁 무렵에 제자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선생님 궂은 날씨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 와 저의 결혼을 축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님 말씀대로 선생님 덕분에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君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혈기(血氣)가 한창 왕성했던 시기라 선생님들의 말씀에 항상 불만이 가득했고,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해 꾸중을 듣는 사례가 갈수록 많아졌다. 무척이나 자존심과 개성이 강했던 윤君에게 꾸지람은 별 효과가 없었다. 그때 문득 대학에서 배웠던 “부모나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각(知覺)을 못 믿게 하거나 감정을 버리라고 충고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일상적인 말을 하여서는 안 된다. 꾸지람을 하고, 무안을 주고, 설교를 하고, 훈계를 하고, 억압, 충고, 문책, 비꼬기, 얕잡아보기 등 이른바 부모나 교사들이 ‘정상’이라 생각하고 말하는 언어는 아이들을 비뚤어지게 만든다. 건전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내적 실체를 믿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뢰는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된다.”는 하임 기너트의 교육심리학이 떠올랐다.

 다음 날부터 본인이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로 윤君의 투정을 모두 받아 들였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 더 많은 말을 해야 하더라도 윤君이 진정으로 나와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그 스스로의 욕구를 바라보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열어두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선생님을 한 번 이겨보고 싶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무엇으로 이겨 보려고?”, “아무거나 그냥 이겨 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겨 버렸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윤君의 심리였다는 것을 알기에는 어렵지가 않았다. 이후로 선생과 제자의 벽을 허물고 친구처럼 보낸 1년의 시간이 지나고, 3학년으로 진학한 후 나와 인연이 있어서인지 우리 학급으로 분반이 되어 학급 실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어서인지 몰라도 2학년 때와는 달리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지도자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학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 명문 대학에 진학하였다.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을 이겨보지 못 하네요’라는 말과 함께 떠났지만, 지금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서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 찾아 온 것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학생도 교사에게서 인정(認定)하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즉, 부모와 교사의 말은 학생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아가 부모나 교사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학생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분위기 조성과 최악의 사태를 빚어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화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까? 예를들어 어느 학생이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이 경우에, 학생의 입장을 고려한 교사는 “기한이 넘었는데 너무 바빠서 깜박 잊었구나. 책을 반납해야지.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단다.”라고 했지만, 또 다른 교사는 학생의 성격을 들추면서 “너는 책임감이 너무 없어! 언제나 미루고 있다가 그 모양이지. 어쩌자고 그 책을 아지 반납하지 않고 있니?”라고 했다. 어느 대화가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지는 독자가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교사들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격과 인격을 판단하려 한다. 여기에, 효과적인 대화와 비효과적인 대화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 해야지, 학생의 개성이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것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원리를 학급 운영에 적용할 경우 학생에 대한 교사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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