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똑똑

연구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청색 유니폼 같은 점퍼 차림의 남성이 들어서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20년 전에 수업을 들었던 학생인데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가게 되어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이름이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는 박달재를 넘다가 학교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하면서, 수업 시간에 내게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내 연구실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칭찬 한마디였다. 수업 중에 영자신문을 읽다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요약하여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칭찬이 기억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학 강단에 선지 30년이 다가오는데, 교수의 한마디가 학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잊을 때가 많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늘 좋은 말만 해주고 격려해주면 좋겠지만, 학생들을 꾸짖을 때도 있고 별 생각 없이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언젠가 한 여학생에게 이번에 공부를 안했구나! 중간고사 성적이 반에서 꼴찌다라고 말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귀여운 여학생이라 허물없이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그 학생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실력을 쌓은 후 서울에서 유명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결과가 긍정적인 것이라 좋은 일이지만, 사실 그 여학생은 내게 살짝 복수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여학생은 내 강의를 신청한 적이 없고 또 졸업 후 학교를 들러도 나를 찾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른 졸업생들을 통해 듣게 되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강의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면서 사제지간의 정을 쌓게 되는데, 학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성적 처리 때문에 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교수는 연구실에 도둑이 들어 자신이 평소 자신이 아끼던 귀한 책자들을 마구 훼손했다는 얘기를 했다.

값나가는 물건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책을 대상으로 삼은 걸로 보아 범인은 그 무렵 성적에 불만을 품었던 학생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학교수라면 누구나 학기말에 성적처리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다.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원하고, 교수는 상대평가 기준을 지켜야 한다.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공정하게 채점을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점수를 둘러싼 항의와 부탁은 다양하다. 채점과정에 의문이 있다는 용기 있는 문의부터 취업을 위해, 그리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하소연까지 다양하다.

언젠가 강사 시절에는 한 남학생으로부터 F학점을 받아 부모님께 야단을 맞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면서 제대한 후에 보자는 협박(?)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1등을 한번 해보고 싶으니 점수를 올려달라는 철없는 여학생의 전화를 받고 꾸짖은 적도 있다. 물론 낮은 점수를 받고 그 다음 학기에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귀여운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교수에게 은근히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교수로서 학생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늘 최고점을 받던 학생이 한 과목에서 B를 받은 일이 있다. 교수 입장에서는 B 정도면 잘한 것이고 점수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 아니라고 위로를 할 수 있겠지만, 학생은 장학금을 놓치고 부모의 신뢰를 잃고 한동안 우울해 할 수가 있다.

교수의 한마디에 학생들이 행복해하고 상처를 받고, 학점 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하니만치 교수들은 언행에 있어 신중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사명이 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수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기에 대학교수의 길은 사실 너무도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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