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세명대 교수

 

 

 

이곳 시애틀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개를 키우는 집이 참 많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개 키우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개를 키우면 약간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그런 돈은 아파트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개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비닐함 등에 쓰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 보다 개를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산책길에서 가끔 만나는 키르마란 녀석도 훈련이 잘되어 있다. 가까운 공원에는 개가 줄을 매지 않고 놀고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샤워장도 있다. 여행지에서 개를 받아주는 호텔도 많다. 이래저래 미국은 개의 천국이다.

그러다보니 애완견 관련 산업은 상상 이상이다. 개는 그만큼 미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집에 있는 우리 개, 벨이 머리털이 하얗게 변했다고 아들이 전해왔다. 아껴주던 집사람과 내가 갑자기 없어지고 그나마 아들 녀석도 직장에 나가느라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에 별다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녀석을 데려와서 유학파 개로 만들어 줄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개는 반려동물이라는데 스스로 남에게 위안이 되지만, 그런 만큼 스스로도 사람에게 돌봄을 받으면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보니 혼자만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고 최근에 오랫동안 기르던 개가 죽어 안타까워하던 처남에게 들은 말이 ‘개는 죽어 전부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상상을 해보았다. 미국의 경우는 개인주의의 저맥락 사회이다 보니 개인은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워진다. 그만큼 개인은 자유롭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대키지 않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는 반려동물로서 역할이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개를 보면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성격과 관련한 상상이 작동하곤 한다.

불가의 조주스님은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말을 했다. 모든 중생에 불성이 있는데 개에게는 없다는 화두를 통해 ‘불성의 유무(有無)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음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훌륭한 얘기지만 왜 하필 개인가 싶다. ‘개 같은 내인생’이라는 스웨덴 영화에 붙어있는 리뷰에는 원래 스웨덴에서 ‘개같은’은 좋은 의미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개같은 내인생’이란 넋두리를 들으면 곱게 들리지 않는다.

불가에서든 우리의 일상에서든 ‘개’는 이래저래 안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관계지향의 고맥락사회이다 보니 어쩌면 균형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권위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사회에서 주인의 선악에 관계없이 충성하는 개가 어떤 문화적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문득 개를 생각하다 우리 사회와 미국사회의 차이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자본주의 사회로서 점점 외형상 비슷한 사회로 수렴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가 개인적인 사회가 되었는가 놀랄 날이 올지 모른다. 개인주의 사회의 연원이 긴 사회와 관계지향의 고맥락 사회에서 빠르게 개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경우는 사회문제가 다를 수 있다. 후자가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우리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우리사회에서 문제에 봉착한 개인을 구할 힘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웃보다 개한테서 위안을 더 찾아야 하는 시절이 가까이 왔는지 모른다.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연줄사회로 개인을 매여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건강한 사회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이웃끼리 어울릴 수 있는 이벤트를 매주 마련하고 있다. 나름대로 이웃끼리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좀 지났지만, 서울에서 골목길을 살리고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좋은 모델을 구축하여 확산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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