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일정한 수준을 담보하는 작품집을 고르기 어려울 때 문학상 작품집은 대안이 되기도 한다.

심사위원들이 치열하게 골라낸 빼어난 작품과 수상작가가 고른 자기 작품, 또 본선에서 경쟁이 되었던 작품까지 수록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12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집 ‘빈 집’을 잘 만들어진 이야기들의 잔치에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황순원 문학상은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황순원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어, 한국 정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심화·확산시키기 위해 제정’했고 ‘지난 1년간 창작,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오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 한다. 고료를 미리 제시하고 작품을 공모하는 경우와 달리 기존의 작가들에게 격려를 보내는 방식이다.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를 하고 난 뒤, 소설 쓰는 일을 고무받는 것이다. ‘2012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김인숙의 ‘빈집’과 수상작가가 직접 고른 자선작‘칼에 찔린 자국’‘산너머 남촌에는’‘단 하루의 영원한 밤’과, 최종후보에 올랐던 다른 작가의 작품 여덟 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올해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인숙은 대학 일학년 때 쓴 ‘상실의 계절’이라는 소설이 신춘문예에 ‘덜컥’ 당선되는 바람에 작가로서 오래 살아왔고, 팔십 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작가답게 그 무렵 이십 대를 보낸 이들이 앓았던 방황과 고민, 또 그들이 삼십대가 되어 회억하는 방식의 구십년 대의 후일담 문학,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까지 다양한 작품 세계와 주제 의식을 확장해 나가는 동안 전태일 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대산 문학상, 동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인 ‘빈 집’은 남편과 27년을 산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녀는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그 나이에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자긍심을 갖는 인물이다. 아들과 딸이 자라 제 밥벌이를 하고 있고, 이삿짐을 나르는 남편을 경멸하지만 조금은 사랑한다고 생각도 하며 소소한 불만이 있는 일상을 기꺼워한다.

남편을 경멸하는 이유는 ‘좀생이’과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반전과 놀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술도 담배도 안하고 화투판에 끼어들 줄도 모르고 딴 데 한눈을 팔 줄도’모르며, ‘돈을 크게 벌 줄도, 크게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뿐 만 아니라 ‘평생 동안 그 어떤 모임에서도 그녀는 남편이 가장 먼저 계산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구두쇠여서인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언제나 무엇엔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머리가 벗겨져서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지만, 몸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답게, 그러나 대머리라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근육질인 사람이다. 아내는 그 남자의 근육질 몸이 대머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번인가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을까. 남편의 그런 외모는 추리소설의 결말에 등장하는 반전처럼 아내를 놀라게 할 어떤 것과 관련이 있기도 한 것인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남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잠시 전개된다. 남편은 고모부가 죽기전 물려준 영천의 낡은 집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아내가 생각했던 자기만의 비밀이 없는 남자가 아니라, ‘세상 한구석에서 세상 전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특히나 아내는 모르는 것’인데, 그가 영천 집에 수집한 열쇠들은 원룸 이사를 부탁한 젊은 여자 아이들의 것이고, ‘그 열쇠들은 분주히 서로의 몸을 부대껴가며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는 진술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호러가 되기도 하고, 존재의 궁극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27년이란 세월은 남편을 충분히 알만한 시간이 되는 걸까, 아니면 인간은 언제라도 새롭게 비밀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일까.

비밀은 재산일까, 재앙일까.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한 남자의 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의 그 자신만만함이 어떻게 해석되겠느냐고. 그러나 비유로 읽는다면, 성실한 남자의 상상적 일탈로, 이 험한 세상에서 이야기로만 일상을 벗어나는 것으로 읽는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함께 수록된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각자 다른 지문처럼 절실하고 독특한데, 일독만 권할 수는 없다. 읽을 적마다 이야기들은 숨겨진 것들을 꾸물럭 꾸물럭 내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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