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 사시장철 님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출근길 직장인들의 옷도 두툼해지는 초겨울 날씨. 급격한 운동은 건강에 독이 되지만, 가벼운 산보나 기분 전환용 여행은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휴일을 맞아 한국관광공사에서 11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소개하고 있는 테마여행지를 가보는 것은 어떨까. 11월도 이제 막바지 더 추워지기 전 가족,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소리 ‘아리랑’을 찾아 조금은 멀리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정선의 자연과 정서를 닮은 가락

정선아리랑은 산간 지역인 정선의 자연과 정서를 쏙 빼닮았다. 빠르고 경쾌한 밀양아리랑이나 영화 ‘서편제’에서 나오는 구성지고 유려한 진도아리랑과는 달리 정선아리랑은 단조롭고 유장한 것이 특징이다. 또 가사는 구슬프고 애절하다.

정선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중의 오지이자, 두메산골의 대명사였다. 신경림의 ‘민요기행’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는 정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아찔한 비행기재를 위태롭게 넘어가야 했다”고 묘사하고 있을 정도다. 그보다 앞서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며 정선의 험한 산세를 이야기했다.

정선아리랑 가사 3000여 수에는 그처럼 첩첩이 빼곡한 산자락, 산과 산 사이로 꺾이고 휘어 흐르는 강물, 지형적 고립성, 산골 생활의 고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삶에 대한 낙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문에 정선아리랑은 1971년 강원도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됐고, 정선에서는 1976년부터 해마다 정선아리랑제를 개최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의 풍광 ‘한눈에’

무형의 아리랑을 찾아가는 유형의 여행코스는 거칠현동, 아우라지 처녀상, 정선아리랑전수관, 아리랑극 공연장 등 어디라도 좋다. 가장 먼저 고갯길에 올라 정선 땅을 한번 조망해보자.

정선읍에서 나전역 가는 길에 위치한 반점재는 차량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450m 정상에 서면 조양강에 포근히 안긴 마을 풍경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신동읍 조동리의 새비재도 정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기에 안성맞춤인 명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오르는 길 어느 지점부턴가 고랭지 배추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반점재와는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선읍 북실리와 귤암리 사이의 병방치 전망대 또한 놓치기 아까운 장소다. 한반도 모양의 밤섬 둘레를 동강 물줄기가 180도로 감싸 안고 흐르는 비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U자형으로 돌출된 구조물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전망대도 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방문객이 급증했다.

 

●정선아리랑의 흔적을 찾아

구비 전승되는 민요의 특성상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멸망 후 조선의 신하 되기를 거부하고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에 들어와 살다 죽은 고려 유신 7명에게서 기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이 망국의 한을 읊은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의 시작이라 한다.

‘애정편’ 무대인 여량의 아우라지에는 폭우로 물이 불어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여량 처녀와 유천리 총각의 애절한 사연이 담겼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라는 대목이 절로 생각나는 곳.

아우라지는 강원도 일대에서 벌목한 목재가 1000리 물길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되던 출발점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떼꾼들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떼꾼들은 벌이가 상당해서 ‘떼돈 번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생겨났으며, 동강 주변에는 객줏집이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아우라지 강기슭에는 정선아리랑전수관도 있다.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 4인(김남기·유영란· 김길자·김형조)을 비롯해 전수 교육 조교, 전수 교육 이수자, 전수 장학생들이 활발한 전승 활동을 펼치며, 매주 수요일에는 정선아리랑 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동강은 조양강에 동남천이 합해지는 정선읍 가수리~영월 구간을 일컫는데, 정선 지역인 가수리~신동읍 고성리 구간도 황홀한 풍경의 연속이다.

자동차도 좋고 자전거도 좋으니 이 구간을 한번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오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가수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는 맛이 각별하고, 고성리에 도착하기 전 나리재에서 내려다본 동강은 무척 아름답다.

 

●추억을 찾아 내일을 보다

극단 무연시가 공연하는 정선아리랑극 ‘어머이’는 꼭 챙겨봐야 한다. 정선오일장(끝자리 2·7일)이 열리는 날 오후에 군청 옆 문화예술회관 3층 공연장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아리랑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 기록사랑마을전시관(옛 함백역)과 억새전시관(옛 별어곡역)도 함께 둘러보자.

기록사랑마을전시관은 한때 함백 지역 탄광 산업의 중심지였던 신동읍 조동8리의 사라진 함백역은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복원, 관련 기록물을 보존해둔 곳이다.

국가기록원은 조동8리를 기록사랑마을 1호로 지정하고, 전시관 앞에 표지석도 세웠다. 옛것이 자꾸 사라지고, 옛것을 기억하는 이도 점점 줄어드는 요즘 같은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기록사랑마을전시관 가까이에는 정선아리랑학교가 있다. 정선아리랑연구소가 아리랑 보존과 교육을 위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개별 여행객을 위한 아리랑 체험이 아닌 전문적인 교육이 펼쳐진다. 주말에는 우표, 딱지, 성냥, 크레용, 각종 학용품 등 추억의 물건과 근현대사 자료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억새전시관도 함백역처럼 별어곡역의 이용객이 줄어들자 보통 역에서 간이역으로, 간이역에서 작은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억새 군락지 사진, 민둥산 모형도, 향토 사료 등을 전시한다.

두 곳 모두 상시 개방하지 않으니 신동읍과 남면사무소에 문의해보고 가야 한다.

<이도근>

 

●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

-정선군 관광문화포털 정선여행(www.ariaritour.com), 정선아리랑학교 (www.arirangschool.or.kr), 병방치 스카이워크(www.ariihills.co.kr)

▷문의전화

정선군 종합관광안내소(☏1544-9053), 정선아리랑전수관(☏033-560-2897), 추억의 박물관·정선아리랑학교(☏033-378-7856), 정선아리랑극공연(☏033-560-2562), 병방치 스카이워크(☏033-563-4100), 억새전시관(남면사무소·☏033-591-1301)

 

● 여행 팁=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극 ‘어머이’ 공연은 정선아리랑의 선율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이다. 공연주제는 주기적으로 바뀌지만, 정선아리랑에 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이고도 신명 나는 공연이다. 장날 한 차례 열리는 공연이니 놓치지 말자. 선착순 입장이며 무료다. 공연시간은 4~12월 장날(끝자리 2,7일) 오후 4시 40분. 문의는 정선군청 문화관광과(033-560-2562).

 

● 추천여행코스

▷당일 코스=아우라지→반점재→병방치 전망대→정선오일장→아리랑극 관람

▷1박2일 코스=<1일차>아우라지→반점재→병방치 전망대→정선오일장→아리랑극 관람 <2일차>가수리~고성리 드라이브→새비재→기록사랑마을전시관→추억의 박물관→억새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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