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원두막을 지으려고 해도 엄격한 규제 때문에 엄두도 못냈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에 전원주택이 들어서니 환경파괴는 둘째 치고 공사소음에 고통스럽습니다.”
낙가산(청주시 상당구 용정동?해발 475m) 산자락에 위치한 이정골. 청주의 끝자락에 위치한데다 과거부터 많은 서원들이 드나들었던 신항서원, 효종 3년(1652년)에 세워진 ‘순치명석불입상’이 발견되는 등 충북지역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하지만 이젠 다 옛말이 됐다.
오래 돼 보이는 슬라브식 주택에 최신식 건물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아예 정원을 갖춘 전원주택도 드문드문 있었다.
한때 서원들과 함께 이 마을을 상징했던 석불상은 몇 년 전부터 위세를 잃었다. 효종때 만들어진 이 석불상은 이 마을 입구에서 마을사람들을 지켰지만 이젠 한 어린이 집이 대신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석불상을 불과 500여m 앞에 두고 어린이집이 떡하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마을 초입에 3~4개의 어린이집이 생겨났다.
석불상 인근에 교회건물이 들어선다는 말도 들렸다.
문화재 발견된 곳을 지점으로 반경 300~500m 이내엔 주거용 건물이 들어설 순 없지만 어린이집, 교회 등은 예외다. 이 같은 아이러니한 법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교회건물이 이곳 시골마을까지 찾아온 것이다.
주민 김모(62)씨는 “한창 개발붐을 탈 때에도 이곳은 안전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이 들어섰다”며 “처음 어린이집이 생긴다고 했을 때 많은 반대를 했었는데 결국 들어섰고 이젠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차라리 주택이 더 나을 뻔 했다”며 “규모가 크다 보니 공사기간만 1~2년 정도가 걸려 공사소음과 화물차량들 때문에 주민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이정골은 나은 편이다. 용정축구공원 인근에는 빈 집도 꽤 됐다. 축구공원이 생긴 이후 사람이 하나둘 떠났다.
축구공원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곳에는 24만여㎡의 자동차매매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미 청주시로부터 허가를 받았고, 조만간 공사에 착공한다는 시청 직원의 귀띔이다. 이곳을 이용, 낙가산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은 반대를 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3~4채의 주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모두 이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예 마을이 두 동강 난 곳도 있었다. 율량 택지개발지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 절반 주민들은 이곳을 버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율량 택지개발지구로 인해 도로가 새로 만들어지는데 위치가 정확히 이 마을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버렸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산들도 이젠 사라졌다. 한쪽은 예식장 공사로 산을 깎아 내렸고, 다른 한쪽은 전원주택단지 조성을 위해 산을 깎아 버렸다.
주민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예전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는데 공사장 인부들이 찾다보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김모(여?55)씨는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지냈었는데 이젠 불안한 마음이 들어 문을 꼭 걸어잠그고 다닌다”면서 “동네 민심도 흉흉해져 마을 사람들끼리도 잘 대화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철주 청주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지자체 들이 나서 개발을 자제하지만 청주시는 오히려 권장하는 것 같다”며 “도시발전을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개발을 진행하다 보면 언젠간 자연환경이 파괴된다”고 조언했다.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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