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캐나다에 있는 큰 아들과 며느리 될 요코가 결혼식 일주일 전에 한국에 왔다. 그 전까지만해도 결혼식 날은 잡아 놓았는데 당사자들이 없고 보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막상 애들이 오고 나니 일정이 분주하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애들이 한국물정에 어두워 모든 일정을 내가 잡아 놓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내 도움이 필요했다.

밤늦게 도착한 애들은 겨우 몇 시간만 자고 이튿날 웨딩 촬영을 하러 갔다. 웨딩 플래너인 제자가 소개한 곳인데 깨끗하고 프로다운 느낌이 들었다.

애들을 태워다 주고 며느리 될 요코가 한국말을 못해 적당한 통역으로 드레스,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을 고르는 걸 도와주었다. 워낙 밝고 청순하게 생긴 요코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빛이 났고 아름다웠다.

이튿날은 시골 선산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장남인 큰애는 공손한 큰절로 조상들께 인사를 드렸고 요코는 전날 집에서 배운 한국식 절로 인사를 드렸다. 워낙 상냥하고 밝은 요코는 무슨 일을 하건 누굴 만나건 화사함을 잃지 않았다. 요코의 밝고 깨끗한 성정이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어쩜 저 나이가 되도록 그토록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애가 내 며느리가 되다니 너무 기쁘고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 내외만 적막하게 있다가 아들과 요코가 오니 사람 사는 집 같았고 특히 사랑스런 요코가 나풀나풀 왔다갔다 하니 집안 분위기가 전과 딴판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날도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코에게 딸처럼 이것 저것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사주고 싶었으나 극구 사양을 해 간신히 팔찌와 부츠 한 켤레를 사 줄 수 있었다. 아들은 모처럼 한국에 와 쇼핑을 하면서도 경제성이나 당위성을 꼼꼼하게 따졌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거나 쇼핑을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반성을 했다. 아들 내외를 보며 남편과 나는 다시는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알뜰하게 살기로 다짐을 했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오신 요코 부모님들은 서울에서 하루 머물고 청주로 내려왔다. 그야말로 첫 상견례였는데 전통 한국식당을 예약해 두었고 집에서 다과라도 대접하려고 마음 먹었다. 요코 부모님께서는 듣던대로 전형적인 일본의 중산층이었다. 차가 밀리는 바람에 시간이 없어 미처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며 여행복 차림이었는데 옷차림에서 검소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남편은 그들의 옷차림을 보며 깊이 감동하는 눈치였다.

우리 같으면 좋은 옷에 성장을 하고 왔을텐데 그야말로 오래되고 수수한 차림이 많은 걸 느끼게 했다. 요코 어머니는 그야말로 자연주의자이며 물욕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화장도 일절 하지 않았고 겉치레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우리에게 줄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챙겨왔는데 그야말로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작고 성의가 담긴 것들이었다.

결혼식 날 미용실로 가 약간의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었다. 요코 어머니가 한복을 처음 입어보는 터라 신경이 쓰였는데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고 편해 보였다.

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오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일본인 하객을 배려해 통역을 섭외했는데 일어과 여학생으로 몇 주일 전부터 열심히 준비를 해왔다. 현악 삼중주가 울려 퍼지며 신랑이 입장하고 눈부시게 아름답고 해맑은 요코가 입장했다.

주례 선생은 지인이자 교수인 분을 섭외했는데 진부하지 않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신랑 신부가 작성한 질문지를 토대로 흥미있고 그야말로 현대식으로 주례사를 전했다. 모든 하객들이 진지하고 조용하게 주례사를 경청했다. 작은 아들과 친구가 축가로 요코가 요청한 팝송을 불렀다.

폐백을 마치고 식당으로 들어서자 아들 내외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요코를 보고 반가워했다. 한복을 입은 요코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화사했다.

무엇보다 순수하고 맑은 그녀의 영혼이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했다. 무엇보다 어수선하지 않고 경건하게 진행된 아들 결혼식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요코는 며칠 전부터 우리와 헤어질 일이 슬퍼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아들이 전했다.

나와 남편도 요코가 떠나면 사랑스런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어쩌나 생각하며 울적해 했다.

요코가 떠나던 날 배웅을 할 때 나와 요코는 깊은 허그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는 내게 요코는 손수건을 건네며 어머니 오월에 다시 올께요라며 아쉬워했다. 아들 결혼식이 끝나자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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