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서 즐기는 뜨끈한 겨울 여행… 충주 수안보 온천

 

연일 강추위에 눈까지 내리는 완연한 겨울이다. 찬바람에 움츠러든 몸과 쌓인 피로를 풀어주기에는 온천이 제격. 그래서 겨울은 온천의 계절이라 부르는가 보다. 추운 겨울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묵은 피로도 풀고, 가족들과 함께 별미를 맛보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확실한 주말 휴식여행이 또 있을까.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2월을 맞아 이번 주말엔 충북의 대표 온천인 수안보로 떠나보자.

●유구한 역사 자랑하는 ‘왕의 온천’

수안보 하면 온천이다. 전국 곳곳에 온천이며 테마 워터파크가 우후죽순 생겨나도 중-장년의 뇌리에는 ‘수안보=온천’이라는 공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수안보온천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찬바람 부는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곳이 아닐 수 없다.

‘수안보(水安堡)’의 지명 유래를 보면 ‘보(洑) 안쪽의 물탕거리’ 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로 변천된 것으로 18세기 초 최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최초로 그같은 지명이 기록돼있다.

수안보온천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사’의 현종(재위 기간 1009~1031) 조 9년에 ‘유온천(有溫泉)’이라고 수안보온천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으니 약 1천년 정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요지도서,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 30여 종의 역사책에 이름이 올라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가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충북 사료인 ‘청풍향교지’에는 숙종이 휴양과 요양을 위해 수안보에서 온천을 즐겼다는 내용이 있다. 수안보온천을 ‘왕의 온천’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885년 노천식 욕조가 설치되면서 수안보온천은 근대 온천으로 발전했고 1929년 온천공 굴착으로 대중탕과 여관이 생겨나면서 현대식 온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대로 와서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등 역대 대통령들도 수안보온천을 즐겨 찾았으며, 1970년대에는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1980년대에는 최고의 가족 여행지로 성황을 누렸다.

 

●노천탕에 몸 담그면 월악산이 한눈에

수안보온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이다. 시추 과정 없이 온천수가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는 말이다. 그만큼 물의 힘과 성분이 뛰어나다. 지하 250~700m 암반층에서 솟는 온천수는 53도(℃)로, pH8.3의 약알칼리성을 띤다. 칼슘과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물의 성질은 부드럽다. 라듐 성분이 포함되어 피부 질환이나 부인병, 위장 장애와 신경통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무색-무미-무취한 온천수는 식수로 음용도 가능하다.

수안보온천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가 온천수를 관리하는 중앙 집중 방식을 고집한다. 수질 관리와 온천수 보호를 위해 충주시에서 온천수를 확보한 뒤 대중탕이나 호텔 등에 제공한다. 수안보온천지구에 자리한 대다수 호텔과 콘도, 모텔 등이 이런 식으로 온천수를 공급받는다. 대중탕은 물론 모텔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도 이렇게 공급받은 온천수이고 보니 이용객은 어디서든 양질의 온천수를 즐길 수 있다. 자그마한 모텔이라도 욕조에 물만 채우면 온천탕이 되는 셈이다. 호텔급 숙소에서는 객실과 별도로 대욕탕을 운영해 보다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수안보에는 대중 온천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워터파크식 온천, 가족과 연인을 위한 가족탕도 있어 입맛 따라 즐기면 그만이다. 물론 알싸한 겨울 공기를 맞으며 즐기는 노천탕도 빼놓을 수 없다.

충주시에서 건립하고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수안보하이스파는 남녀대중탕을 보유하고 있으나 숙박시설은 갖고 있지 않다. 물탕공원 바로 옆의 수안보상록호텔에는 온천욕장 외에 참숯사우나, 맥반석사우나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수안보파크호텔은 노천탕을 보유, 월악산 산줄기를 감상하면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음을 자랑한다.

 

●충주호에 비친 설경 역사의 숨결 들려와

충주는 사과와 호수, 온천으로 유명하지만, 삼국문화가 융합된 중원문화의 발상지로 곳곳 걸음걸음마다 역사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앙, 중원이라는 말에서 짐작되듯 충주는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한 고장이다. 동서로 보든, 남북으로 보든 국토의 중앙에 충주는 놓여있다. 고구려 땅이던 시절에는 ‘국원성’으로 불렸고, 신라의 땅이 되고는 ‘중원경’으로 불렸다.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이전 충주시를 에워싼 고을 이름이 중원군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충주는 확실히 한반도 중앙에 떡 자리 잡은 고장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충주 사람들은 국토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매우 강한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었다면 충주의 ‘중원문화’를 돌아볼 차례. 온천지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중원미륵리사지(수안보면 미륵리)는 창건 연대나 내력, 사원의 명칭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중기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96호다. 석불 앞의 미륵리 5층 석탑은 보물 95호, 미륵리 석등은 충북 문화재 19호다.

미륵리사지에서 하늘재까지 역사의 숨결이 서린 숲길 걷기도 즐길 수 있다. 문자기록이 남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개로 꼽히는 고개가 바로 경북 문경시 관음리와 충주시 미륵리를 잇는 고개다. ‘하늘재’로 불리는 이 고개는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이사금 3년에 개통됐다. 하늘재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그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계립령, 계립현, 마목현, 마골산, 마골참, 대원령, 한훤령, 겨릅재, 지릅재 등이 하늘재의 별칭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탄금대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탄금대는 해발 200m 높이의 대문산으로 조각공원, 탄금정, 문화원, 야외음악당 등이 위치해 있다.

탄금대는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켜면서 망명의 한을 달랜 곳이자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순국의 현장. 겨울의 이른 아침 충주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탄금대의 설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그린다. 탄금대 아래를 흐르는 남한강의 물소리는 나라 잃은 우륵이 타던 가야금 소리처럼 애절하고 서럽다. 해질녘 남한강과 중원의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낙조는 탄금정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탄금대 건너편에 우뚝 솟은 7층 석탑은 국보로 지정된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높이 14.5m로 신라의 석탑 중 가장 높은 탑으로 신라 원성왕 때 국토 중앙에 만들었다고 해서 ‘중앙탑’으로 불린다. 주변에 충주박물관이 있어 역사문화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 개관한 충주 고구려비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 비석인 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를 비롯해, 고구려에 대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중원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한강 이남 진출을 입증하는 결정적 유물이다. 전시관 관람은 무료,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다. 월요일 휴관.

충주호는 국내 호수 가운데 가장 크고 깨끗하다. 겨울 설경을 거울 같은 수면에 담은 충주호는 한 폭의 그림. 호반도로를 끼고 달리다 충주나루나 월악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붉게 물들기 시작한 충주호를 달리는 맛은 짜릿하다. <이도근>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충주시청 문화관광(http://cj100.net/tour), 수안보온천(www.suanbo.or.kr), 술박물관 리쿼리움(www.liquorium.com), 충주공예전시관(www.cjcraft.net)

 

▷문의전화=충주시청 관광과(☏043-850-6731), (사)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043-846-3605), 술박물관 리쿼리움(☏043-855-7333), 충주공예전시관(☏043-854-0281), 충주고구려비전시관(☏043-850-7301)

 

●추천여행코스

▷당일 코스=충주고구려비전시관→충주 탑평리 칠층석탑→리쿼리움→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충주 미륵대원지→수안보온천

▷1박2일 코스=<1일차>충주고구려비전시관→충주 탑평리 칠층석탑→리쿼리움→월악나루→수안보온천 <2일차>충주 미륵대원지→하늘재→충주호 악어섬 조망→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충주공예전시관

 

●주변 볼거리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최함월고택, 충주시택견전수관, 향산리미술촌(향산리 미술체험학교), 수주팔봉, 탄금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