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출근길에 문자가 날아왔다.

사람들이 말한다. 세월에 쫓기고 시간에 쫓긴다고. 아니다. 아무도 그대를 쫓는 것 없다. 흘러라, 존재 그 자체로.”

이 바쁜 시간에 웬 뜬금없는 소리? 그런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연말이 되면서 괜히 더 바빠지고 동동거리게 되지만 따져보면 아무도 쫓는 것은 없다. 그냥 심리적일 뿐이다.

지난 주말, 시간을 밀쳐두고 청주 다문화센터 아이들과 영화를 봤다. 착한 영화라는 철가방과 우수 씨.

불행하게 살아온 한 남자. 어렸을 때 버림받아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채, 구걸 등으로 살다가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폭력전과로 수감되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을 깨달으면서 기부천사로 살다가, 지난해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남자, 고 김우수 씨. 영화는 그의 실제이야기를 담았다.

우수 씨는 중국음식점의 배달부였다. 월급은 72만원, 평생 가족도 만들지 못했고 집은 갖지 못했다. 몸 하나 겨우 뉘일 1평 남짓한 고시원이 그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72만원을 쪼개 매달 5명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7년 동안이나 숨어서 돕던 선행이 알려지면서 2009년엔 대통령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영화는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지난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의 삶의 방향이 바뀐 것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중 한 어린이재단이 펴낸 잡지를 보고서였다. 그는 우연히 축구선수 꿈을 키우는 소년가장 어린이가 후원자를 찾는다는 기사를 읽게 되고, 그 형제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어린이로부터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은 것. 자신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 그는 행복한 마음에 펑펑 울다가 그때부터 남을 돕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낮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감독은 그에 대해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고시원에서 살면서도 생명보험을 들어 그 보험의 수령자를 5명의 어린이로 해놓고 장기기증까지 실천한 작은 예수였다고 설명한다.

잔잔한 감동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엮은 이 영화가 착한 영화라고 칭찬을 받는 것은 김우수 씨의 삶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모든 이들이 나눔과 기부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윤학렬 감독은 한 푼도 받지않고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으며, 감독의 친구가 84000만원의 제작비를 댔다. 우수 씨 역을 맡은 최수종 씨를 비롯한 모든 배우가 무료로 출연을 했으며, 가수 김태원 씨 소설가 이외수 씨 등은 OST의 작사와 작곡을 선사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무료로 극장에 배급을 해주었다. 착한 주인공의 착한 실화를 담은 착한 영화. ‘철가방과 우수 씨는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씩 볼 만 하다.

영화를 본 아이들은 왜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죽어야 되느냐고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하느님의 뜻일 테니까.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공감의 대답이 나온다.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 멀리 있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눔의 실천은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12월은 나눔을 실천하기가 가장 좋은 달이다. 추위를 앞두고 복지시설마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요양원 아동시설 독거노인 조손가정 모자세대 등. 지금 당장이라도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너무도 많다. 직접 시설을 찾기가 어렵다면 이달 들어 순회 모금운동을 시작한 공동모금회를 이용해도 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도 이기적일까요, 공개적인 일에는 나눔을 실천한다고 떠벌리지만 작은 일에는 소홀할까요. 가장 낮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도요.” 영화를 못보더라도 감독의 말을 새겨 들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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