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아침에 서두르다 실수로 그릇을 깼다. 이른 아침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시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흩어진 파편을 깨끗이 치운다고 치웠는데 그만 발을 찔렸는지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상처가 보이질 않았다. 노안이 와서 그런가 하며 배율이 높은 돋보기를 가져다가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찔린 흔적이 전혀 없었다. 통증이 심한데 상처가 없을 리가 없다며 한참을 찾았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상처가 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때까지 강하게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말 장난 같았다. 사람의 감각이란 정말 믿을 수 없는 간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리하게 느꼈던 통증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작가 조셉 콘라드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의식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를 꾸준히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여러 비유로 표현했다.

그는 인간이 믿는 진실1%도 안되는 빙산의 일각 같은 것으로, 무정형의 세계가 수면 아래에 거대한 얼음덩어리처럼 놓여 있다고 지적했으며, 사물의 본질은 호두 알맹이처럼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달무리나 아지랑이처럼 미묘하고 불분명하게 사물을 감싸고 맴도는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그의 소설 가운데 로드 짐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선원들이 좌초당한 배와 승객을 버리고 도망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한 직무유기가 아니라 하마터면 수백 명의 인명피해가 날 뻔 했던 큰 사건이기에 피고인들은 희대의 악당으로 간주된다.

주인공 짐은 그 선원 가운데 하나로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짐은 순백의 깨끗한 세계를 추구하던 이상주의자로서, 탐욕스럽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다른 선원들과는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탐욕과 위선으로 얼룩진 저들과 다른 존재라는 자부심이 그를 지켜주는 삶의 원칙이었고 배가 좌초되는 와중에 짐은 분명 목숨을 걸고 배를 구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부터 도망쳤던 그 야비한 선원들이 타고 있던 구명보트에 자신도 올라가 있다.

아무리 짐이 자신은 다르다고 해도 사회가 볼 때는 다를 게 없다. 사회는 배를 구하려는 영웅 심리에 사로잡혀 있던 짐과 아예 작정을 하고 도망친 비겁자들을 동일한 범법자로 단죄해버린다.

짐의 복잡하고 고뇌어린 내면과 다른 선원들의 얄팍한 위선은 결코 같을 수 없지만 배를 버리고 도주했다는 사실은 똑같다.

인간의 내면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을 선/, /, Yes/No의 획일적인 흑백논리로 규정짓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인물 가운데는 깊은 고뇌에 시달리다가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인물도 있을 것이다. 또 희대의 악당으로 떠오른 인물 가운데도 순수한 사람이 있고 선량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른데, 똑같이 매도당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

우리는 동기와 과정은 살피지 않고 결과만 보는 흑백논리를 벗어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분노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싸운다

인간은 늘 착각을 하며 사는 존재이다. 그 수많은 착각 중 가장 흔한 착각은 바로 내가 옳다는 착각이다. 남에게 선/악의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나는 선이고 남은 악이라고 믿고 나의 주장만을 강요하면 세상은 늘 분규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복잡다단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은 착각을 하며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사회의 혼란과 분규는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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