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는 관계로 주변에 많은 일들을 겪는다. 가끔은 진돗개가 풀려 애지중지 키운 닭들을 모조리 저 세상으로 보내기도 했고, 거위마저도 희생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개가 물어 죽인 닭만 20 마리가 넘는다.

그 버릇을 고칠 수가 없어 금년 여름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개가 물어 죽인 거위를 개밥그릇에 넣고 사흘 동안 밥을 안 주었다. 거위를 먹든지 굶든지 두 가지 중 고르라는 표현이다.

결국 개는 거위를 먹지 않았다. 사흘이 지난 후 거위에는 구더기가 가득했고,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집 개는 닭과 거위를 보면 침은 흘려도 죽이지는 않았다. 우리집 진돗개의 취미는 짐승을 먹지는 않고 물어죽이는 것이었는데 그 버릇이 고쳐진 것이다. 나쁜 버릇은 고칠 수 있을 때 고쳐야 한다.

어릴 때는 귀엽다고 봐주고, 늙어서는 식구같다고 봐줬더니 기고만장해서 매번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제는 닭을 풀어 놔도 안심이 된다.

거위 몸에 붙은 구더기를 보면서 깊은 상념에 젖었다. 우리나라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편하지 않았다.

혹자는 필자가 다문화가정과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것이 뭔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사시를 뜨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근자에도 그런 일을 당하고 너무 오래 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려놓을 때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시점을 놓친 것이다. 필자가 다문화가정에 관련된 사업을 할 때는 학교와 협조하고 협회의 지원으로 무료로 해 온 적이 훨씬 많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행사를 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대학교수 월급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회원들이 십시일반 도울 뿐만 아니라 재능기부로 박사이상의 교수들이 지식 나눔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학생들이 도와주고 마을의 유지들이 협조하고 있다. 행정일은 조교와 간사들이 집안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준다.

13년 전 한 두 명을 놓고 가르치던 다문화한글교육이 이제는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자녀, 다문화가정 남편교육 등 상당히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 없이 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한다. 지난 여름 다문화가정 한글지도사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의 따가운 눈을 의식하게 되었다.

무료로 진행하고 응시료만 받으니 사람들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동일한 발상으로 같은 일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말을 많이 듣게 마련이다. 차별화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 일을 해야 하는데 각자 서로 얻을 것만 생각하고 일을 하니 겹치는 것이 많고, 불필요한 것도 많이 중복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통제가 안 되는 까닭이다.

가끔 주변인들로부터 다문화협회를 좀더 활성화해서 크게 확장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왜냐하면 군청, 도청, 법무부, 교기부, 여성가족부 등 다양한 곳에서 지원하고 있으니 떡고물이 많단다. 슬프다. 군청 주변에 떡고물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각종 단체에서 다문화를 빌미로 지원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 별로 듣지 못하던 단체들이 너도나도 다문화행사를 하겠다고 지원을 요청하는 모양이다. 왜 진작에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는가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13년을 묵묵히 일을 해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험담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교육하는데 사람 수가 통 늘지 않는다. 모임이 여러 개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각종 후원 모임도 많아졌다. 각종 단체들이 모임을 빙자해서 떡고물을 흡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도적인 문제다. 컨트롤 타워도 없고, 나랏돈은 먼저 먹는게 임자라는 의식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봉사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잦은 행사와 홍보 내지 전시성으로 나랏돈만 축내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눈먼 돈을 탐내기 전에 정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시작할 때는 참다운 봉사정인으로 열심히 하다가 불명예로 옷 벗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자.

<중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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