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조사 요청에는 건강상태 이유로 거부…민주당 관계자들 고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인터넷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8)씨가 13일 컴퓨터 등 증거자료를 경찰에 제출했다.

서울 수서경찰서와 강남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오후 2시12분께 김씨가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을 방문해 김씨의 변호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데스크톱 컴퓨터 1대와 노트북 1대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아갔다.

또 김씨에게 이날 경찰에 출석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에 대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진술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김씨는 건강 상태를 이유로 거절했다.

김씨의 변호인인 강래형 변호사는 "김씨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당장은 어렵다"며 "모처에 가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출석요구서를 보내주면 그때 가서 (출석여부를) 정해서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과 선관위는 컴퓨터 이외에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김씨는 이를 거부했다.

강 변호사는 "비방 댓글이 어차피 컴퓨터로 인터넷에 연결해서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동식 저장장치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본다"며 "노트북과 컴퓨터만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국정원 직원들은 스마트폰을 안 가지고 다닌다"고 답했으나 스마트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보여달라는 요청에는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인터넷에 문재인 대선 후보를 비방했다는 민주당의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김씨의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정도로 충분한 범죄혐의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먹어왔다.

김씨가 컴퓨터를 제출하지 않자 민주당 측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11일 저녁부터 김씨의 오피스텔 앞을 지키다 이날 오전 11시 철수했다.

김씨는 갑자기 자료제출에 동의한 이유에 대해 "내가 제출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법적 절차만 있으면 협조하겠다고 수차례 말씀드렸다"며 "지금도 영장이 없어서 굳이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여론이 왜곡돼 너무 심각하게 인권과 명예를 침해당했다고 생각해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제출한다"며 "분명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고 덧붙였다.

검은색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김씨는 노트북에 설정된 비밀번호를 해제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히 앉아 경찰이 데스크톱 본체와 노트북을 준비해온 파란색 상자에 밀봉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김씨는 경찰과 선관위가 처음 방에 들어간 11일 저녁 이후로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번 일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했다"고 말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연결하기 위한 와이브로나 에그, 공유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며 "데스크톱이 있는데 굳이 노트북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후 3시께 경찰이 증거품을 가지고 나가자 국정원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방에서 나와 건물 밖에 준비된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경찰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증거품을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으로 가져가 인터넷 접속기록과 댓글 작성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컴퓨터 분석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 2~3일이지만 이번 건은 통상적인 경우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건은 하드디스크가 2개인 점, 민감한 사안이라 교차 분석이 필요한 점 등의 이유로 분석완료 시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시간단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씨의 변호인은 오후 6시30분께 수서경찰서를 찾아 김씨 명의로 성명불상의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을 감금과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강 변호사는 "피고소인이 민주당 당원이라는 것만 알지 이들을 특정할 수 없어 성명불상의 관계자로 고소했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도 민주당이 김씨가 국정원 직원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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