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부의 딸이고, 육남매의 둘째이며 고등교육법을 근거로 한 학문과 절차를 이수하고 직업을 통해 밥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 내가 가진 색깔과 정체성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내가 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골격은 그러한 명백한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궁핍함은 맑고 순수한 정신을 낳고 불행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에 적합한 조건이라는데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궁핍과 불행은 어느덧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의 중간지점 정도 되는 불혹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위대한 인물은 커녕 내 얼굴에 책임을 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다.

입신(立身)하여 양명(揚名), 거기에 끈기와 속도를 더하여 통달(通達)의 위치를 탐하고 있는 불혹의 연령이 훌쩍 넘어서고 보니 반성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지고 해야 할일도 무턱대고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책임져야 하는 스스로의 얼굴에서 주름만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는듯하여 마음이 바쁘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여 40세가 되면 불혹(不惑)이라고 표현했을진대 내 또래의 지인과 나를 포함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툭하면 흔들리고 툭하면 새로운 사물의 이치에 놀라자빠지기 일수다.

어제와 오늘이 극명하게 달라지더라도 이제는 새삼 놀랍지도 않다.

어찌 보면 40대가 갖는 딜레마의 극복 방법은 마음의 통일이 아닐까 싶다.

믿는바가 요술방망이처럼 순식간에 변심 또는 돌변한다 치더라도 스스로 마음의 통일이 되어 있다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를 설명해줄 길로 갈수 있을 것이다.

몸뚱 아리에 담겨진 마음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은 농부가 키우는 채소밭처럼 항상 움직이고 몇 배로 늘어난다.

행복한일이던 불행한 일이던 간에 밀알 같던 마음의 씨앗을 심으면 그 몇 배로 거두어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찌보면 마음의 밭에 스스로가 뿌렸던 씨앗을 거둬들이는 시기와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주위 깊게 살펴 잡초는 뽑아버리고 거름이 부족하면 거름을 주는 세밀한 보살핌이 나이와 더불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한없이 베풀어야 하는일도 서서히 많아진다.

자식에게도 하염없 내리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상사의 유쾌하지 않은 눈 흘김에도 속절없이 웃음을 베풀어야(?)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박봉의 월급이지만 이웃에게 베풀기 시작하는 마음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사람과 나누고 도와주는 것을 밑 빠진 독에 비유하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콩나물은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주면 어느새 부쩍 성장하지 않더냐는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닌 내 불혹을 흔들림 없이 지탱해줄 뼈대가 될 것이다.

나이 들어 입은 무거워지고 주머니는 가벼워져야 한다 했는데 말은 많아지고 주머니는 자물쇠 채운 듯 잘 안 열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갈 길도 멀고 수양도 더해야 하는것 같다.

그러나 나를 설명해줄 인간다움이라는 근간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스스로 위로가 된다.

나이가 주는 부담감도 많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해주는 나이라는 자연앞에 조용히 한해를 마무리해야할것 같다.

여행!

일생동안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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