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영동상촌우체국

 

 

영동에서도 오지인 이곳 우편창구에서 일한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여기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고객의 모습은 도시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 손수 농사지신 여러 농산물을 바리바리 무겁지도 않으신가 보따리에 들고 하루에 몇 대없는 버스를 타고 우체국에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근무하면서 가장 훈훈하게 느꼈던 고객은 농산물이 아니라 30만원을 들고 오신 할아버지시다.

대리님이 자리를 비우신 날이라 나는 긴장을 한 채 할아버지 고객님을 만났다. “아들이 환갑이라 외국으로 놀러 간데 우리 막내아들 이거 여행가서 쓰라고 줄라고”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계좌번호 어디다 적어오셨어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아들이 돈 보낸다고 하면 안 가르쳐줘 집 주소밖에 몰라”나는‘아들아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라고 문구와 함께 온라인 환을 접수했다.

나는 왜 훈훈하게 느껴졌을까?

1920년대 태어나신 분들의 주민번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 한 점을 훔쳐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우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께서 금융대리님께 하소연을 하고 계신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자식들이 돈을 야금야금 빼 써서 잔고가 안남은 것이다. 다른 통장으로 바꾸시라는 권유에 ‘나쁜 놈’이라고 욕하시면서도 자식들이 필요한데 어떻게 그러냐며 돌아가신다.

적금통장, 보험통장을 꺼내신다. 흥분된 목소리로 “아들카드빚이 어마어마해 다 깨야해”라고 하신다.

고객분 나이를 보면 아들은 초등학생 정도 아들을 둔 가장일 것 같다.

캥거루족이란 신조어가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가져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 층, 나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을 일컫는 말로만 생각했다.

‘노부모에 얹혀사는 30~40대 급증’ ‘부모는 늙어가는 데 미래는 불투명’ 이란 기사를 보면 이 캥거루족이란 말은 이제 20대 30대에게 국한된 신조어는 아닌 듯싶다.

나 또한 대학 졸업 후 취직까지 3년을 부모님께 의지했고 직업을 가진 후에도 부모님과 같이 살며 나도 모르게 의지해왔다.

매일 도시락을 싸주시는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리지도 못했다. 유치원 때나 스물여덜의 지금이나 나는 언제나 효도를 입으로만 했다. “아빠 내가 크면 아빠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줄게”라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리 대신 “아빠 월급 오르면 내가 tv 바꿔줄게”다음 해를 기약한다. “손만 안 벌리면 효도하는 거야 요즘은”라고 하시던 아빠의 말씀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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