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대선 사흘 전인 12월 16일에 마을총회가 열렸다. 그래서 경로당을 겸하고 있는 마을회관에 동네사람들이 모였다. 아직 시간이 있어 남자방, 여자방에서 각기들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방의 정식이가, 왜 대선 직전인 오늘을 총회 날로 잡았느냐고 이장한테 볼먹은 소리를 던지면서, 선거기간 그것도 선거일 임박해서 집회를 가지면 특정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하기 위한 것 아니냐 로 오해받기 쉬운데 그래서 잘못 그렇게 비치게라도 되면 또는 그런 기미가 조금이라도 잡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다그치는 거였다. 그때 영칠이가, “그러니까 자네 말은 ‘외밭을 지날 때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 이런 말 아녀?” 했다가 “이 사람이, 그래, 자네 그렇게 유식하면 나한테 한번 된통 맞을 수 있어!” 하고 정식이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방안 사람들이 쿡쿡대는데 이장이 입가에 웃음기를 마무리하면서 목소리를 착 가라앉힌다.
“정식이 자네 말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열고 있는 우리마을연례행사인데 누가 불순한 집회로 보겠는가? 올해 대선만 아니면 아무런 말이 없을 걸 그 대선 땜에 문제가 됐구먼. 여하튼 걱정하고 신경써줘 고맙네.” 그러자 영칠이가, “정식이 아까 미안했네. 그냥 우스갯소리였어. 알지!” 그러더니, “그건 그렇고 선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군에서 온 선거공보를 보니까 이번 십 팔대 대선에 나온 대통령출마자가 일곱 명이나 되데. 오늘 여자 하나가 사퇴해서 여섯 명이 됐지만.” 그러자 예서제서 한마디씩 한다. “그려 나도 이번에 알었어. 두 명인가 했는데 말여.” “난 세 명까진 알았지 며칠 전에 오늘 사퇴한 여자까지 세 명이 나와서 토론인가 뭔가 했잖여. 오늘 토론에는 여야 출마자 둘만 나온다지?” “나는 못 봤지만 다른 무슨 방송에는 그 다른 네 명도 나왔다더군.” “그런데 그 사람들 다 붙는 건 아닐 거 아녀 하나만 뽑는 거잖아. 누가 봐도 둘 중에 하나가 뻔한데 다른 사람들은 왜 나온겨 도대체.” “그러게 말일세. 자신들도 그런 걸 잘 알 텐데 말여. 대통령까지 나온 똑똑한 사람들 아녀.” “그걸 왜 모르겄어. 하지만 지금나라는 못 미더워 더 잘 사는 나라 만들어 보겠다는 것 아니겄어.” “그야 좋은 생각이지만 것두 될 확률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말이제.”
“아니 안 되믄 또 어떤가 족보에 오를 일인데, 하다못해 이장선거에서 떨어저두, 저 사람 그래두 이장선거에 나왔던 사람이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 판인데, (그러면서 이장 쪽을 힐끗 보며 미안하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거수경례를 하고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우리 가문에서 대통령출마한 사람이라고 족보에 올라 대대로 추앙을 받을지도 모르잖어.” “예끼 이 사람아, 설마 그래설라구 당장 돈도 많이 들어갈 텐데. 무소속 사람들은 나라에서 주는 정당보조금도 없다잖아.” “보조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에 사퇴한 사람 정당보조금 받았다며, 그럼 사퇴한 마당에 그거 도로 내놔야 하는 거 아냐?” “자진해서 내놓으면 몰라두 법적으론 안 내놔두 되나벼.” “그려? 그거 문제 있구먼 문제 있어. 그러니까….”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게 아녀 요새 공약 쏟아 놓는 거 보라구 그것들 다 실행될 수 있는겨? 당장 국민들 환심 살려구 너두나두 막 내놓구 있는 거 아녀?” “우선 붙어 놓구 보자 이거지. 우선 먹기는 꽂감이 달다구, 여기에 넘어가 찍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것 아니겄어.” “그게 문제라니까 선거 날 빼놓구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빌 공자 공약을 다투며 내 놀 건지 원.”
“거 붙구 보자는 것 땜에 네거티브라는 것두 성한겨. 어떻게든 상대방을 넘어트리려면 없는 걸 지어내 음해하는 게 제일 좋은 숫법이거든. 그러면서 서로가 안 그랬다고 발뺌하고, 아니라고 우겨야 하니까 소위 오리발작전, 쇠똥벌레작전이라는 게 생겨난 거구.” “거슬리는 게 또 있어. 대통령씩이나 되려는 사람들이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한참 위라 까마득한 역대 대통령들을 제 새끼 이름 부르듯 하고 개새끼 나무라듯 하니 이래도 되는겨. 난 못 배운 촌놈이라 그런지 통 모르겠어서 하는 소리여.” “그러나저러나 그래도 궁금하네. 여게 이장, 이번에 누가 될 것 같은가?” “무슨 소리여 왜 나한테 물어?” “하도 궁금해서 그랴.” “궁금해? 궁금하면….” “오백원 내노라는겨?” “궁금하면 19일까지 기다리게!”
‘와! 이장다운 대답일세!’
그때 부녀회장이 뿌르르 오더니, “아니, 총회는 언제 할려는 거예요!” 하는 바람에 그제야 이장은 서둘러 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