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얼마 전 결혼한 큰 아들이 강아지 한 마리를 사주고 갔다.

결혼 전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던 남편이 자꾸 고양이를 키우자는 말을 할 때도 건성으로 들으며 자신이 없다는 말로 거절을 했다. 남편과 몇 차례 애견센타에 간 적도 있었지만 그냥 구경만하고 돌아오곤 했다. 주위에서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을 하는 걸 듣기도 했고 나름대로 결벽증이 있어 강아지와 함께 지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구경하고 다니며 앙증맞고 귀여운 강아지를 볼 때면 마음이 동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자제하며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애와 다시 찾은 애견센타에서 생후 두 달 된 말티즈를 만나게 되었다. 그전부터 말티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애완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큰애가 사준다며 강권하자 못 이기는 체 하고 결정을 내렸다. 큰애가 캐나다로 떠나며 엄마 아빠에게 해준 선물이었다.

생후 두 달 된 말티즈는 그때부터 우리 가족이 되었다. 생김이 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천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 달 정도는 우리에 가두어 두라는 주인의 말에 하루에 두 번 먹이를 주고 배변패드를 우리 안에 깔아두었다. 신통하게도 대소변은 배변패드 위에 보았고 먹이통 위에 매달린 물통에서 마치 젖을 먹듯이 물을 핥아 먹기도 했다. 체중 500그램이 조금 넘는 까만 눈동자에 흰색의 천사는 앙증맞은 인형과도 같았다. 얼굴도 귀엽고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 예방접종을 시키러 동물병원엘 갔고 애견센타에 들러 강아지 목욕시키는 법도 배웠다. 수의사 말이 강아지를 너무 외롭게 하지 말고 스트레스는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강아지는 주인성격을 닮는다는 말을 했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이 강아지를 영리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천사가 집으로 온 뒤 인터넷을 뒤지며 애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섭렵했는데 배변훈련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수많은 유기견이 나오는 주된 이유가 배변훈련이 제대로 안돼서라는 사실도 알았다.

일주일 정도 우리에 있던 천사는 자꾸 낑낑대며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럴 때면 잠깐씩 밖으로 내놓아 놀게 했다. 워낙 어려서인지 거실이외에는 무서워 다니질 않았고 거실에서도 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는 가질 않았다. 하루하루 천사는 집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거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실 여기저기 배변패드를 깔아놓았고 천사의 장난감이 나뒹굴었다. 작은 빈병, 작은 인형, 이런 저런 소품들이 천사의 장난감으로 등장했다. 마치 어린애가 있는 집 같았다. 애들 어렸을 때처럼 천사와 장난을 치기도 하고 함께 달리기 시합도 했다.

천사가 온지 이주 정도가 지나자 무리를 했는지 몸살기가 있었다. 천사는 여기저기 용변을 보아 신경이 쓰이게 했다. 몸이 피곤하고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천사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개 한 마리 키우는 게 애 한명 키우는 것과 맞먹는다더니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감상으로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지 않았나 싶었고 다시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민 끝에 애견센타에 전화를 해 다시 돌려줄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일단 분양된 강아지들은 다시 애견센타로 돌아오면 병이 난다며 거절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운동을 하느라 거실을 누비고 있는데 천사가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내 발을 자꾸 깨물었다. 무의식중에 발을 뿌리쳤는데 순간 천사가 휙 나가떨어져 거실 다탁에 정통으로 맞으며 퍽하는 소리가 났다. 천사의 비명소리가 났고 놀라 쫓아 가보니 천사는 혀를 내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죽어 가는지 몸도 굳어가고 있었다. 욕실에서 뛰어나온 남편이 천사를 품에 안았고 난 부들부들 떨며 관세음보살을 쉬지 않고 찾았다. 천사야 제발 살아만 다오, 너를 잠시라도 귀찮아했던 날 용서해다오, 앞으로 다신 널 보내지 않으마... 무수한 상념이 교차되었다. 그러기를 몇 십 분, 남편 품에 있던 천사가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고 서서히 기운을 차려 결국 천사는 살아났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천사가 얼마나 고맙던지 앞으로 천사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뒤 천사와 나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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