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12월이 남다른 것은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2월이 되면 마음이 들뜨기보다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올 한 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어떤 후회가 남는가, 잠시 여유를 갖고 지나간 일들을 헤아려 보며 후회와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이웃에 대한 나눔과 소통, 자신의 삶도 관조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12월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달이 유독 영웅들의 생몰과 활동이 많았던 달이기 때문이다.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되었다가 실패한 뒤 국제 외교활동을 벌이다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자 중국으로 건너가 용정에 최초로 신학문 학교를 세운 충북 진천출신의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 보재와 함께 헤이그 밀사로 갔던 이준 열사가 이 달에 태어났고, 언론인으로 역사가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청원 출신의 대쪽같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 달에 태어났으며, 간디처럼 비폭력 애국 계몽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이 달에 태어났다. 또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충남 예산 출신인 윤봉길 의사가 이 달에 순국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슴 뜨거운 이재명 나석주 의거도 이 12월에 있었다. 이재명 의사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칼로 찌른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에 체포, 사형당한 분이고, 나석주 열사는 일본의 경제침략 본거지인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한 분이다. 또 있다. 청원 낭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제환 선생이 일제강점 후 산속으로 들어가 단식으로 순절한 것도, ‘진달래꽃등 아름답고 서정성 강한 시로 상처받은 민족을 위로해준 김소월 시인이 세상을 뜬 것도 모두 이 12월의 일이다.

12월을 빛내는 것은 우리나라 영웅들만이 아니다.

천재음악가 모차르트가 12월에 사망하고, 악성 베토벤이 12월에 출생했다. 신동으로 불리며 35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600여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모차르트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 내고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음악의 성인 베토벤. 두 클래식 거장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얼마나 큰 것인가.

12월은 문호들의 삶도 되새겨봐야 하는 달이다.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다룬 러시아의 문호 뚜르게네프가 1228일 출생했고, 불멸의 눈부신 작품 두이노의 비가로 그의 이름을 영원케 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229일 하늘의 별이 됐다.

그 뿐인가. 1225일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임은 새삼스러운 주석이 필요없을 터이고, 스웨덴 한림원이 첫 노벨상을 시상한 것이 190112월이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바로 이 달이었다.

이밖에 역사 속에서 중요한 날도 많았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근대화의 신호탄이 된 갑신정변이 일어났으며, 미국은 노예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세계인권선언일과 세계이민자의 날, 소비자보호의 날이 이 달에 들어있고 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 12월에 있다.

올해도 지난 19,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열렸다. 몇 달 간의 열띤 레이스를 거친 끝에 마침내 한 명의 승자, 박근혜 후보가 18대 새 대통령으로 탄생됐다.

선거 뒤 박근혜 당선자를 둘러싼 여러 얘기들이 화제다.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자 첫부녀 대통령의 탄생, 첫 독신 대통령, 1987년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대통령, 헌정사상 최다 득표 대통령, 헌정 사상 첫 공대 출신 대통령 등...후광처럼 회자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선은 당선자를 영광스럽게 하지만 반면 부담을 주는 굴레가 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자가 앞으로 해야할 일은 많다. 우선 보수와 진보, 지역과 세대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해야하는 일부터, 산적한 문제들의 해결 등 앞으로 그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는지에 따라 역사는 12월의 영웅을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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