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온 학생들도 눈에 띈다. 영어권 국가 출신의 원어민 강사야 예전부터 많았지만, 요즘 세계 각지에서 온 국제유학생의 증가로 글로벌 캠퍼스를 실감하고 있다. 한국과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오게 된 학생들에게는 모두 자신들만의 히스토리가 있다. 선진국에서 전자기술을 배워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학생, 정보통신기술을 배워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는 모국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고 싶다는 학생,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게 된 후 UN에서 일하고 싶다는 학생, 그리고 K-팝과 드라마에 심취되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학생 등 모두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원어민 강사 가운데는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다양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 어느 대도시 소외지역의 고교에서 일 년간 사회과목을 가르쳤다는 20대 초반의 원어민 강사는 유명 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학자금 융자를 갚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으며 다 갚으려면 한참 걸릴 거라고 했다. 학교에서 젊은 학생들의 멘토를 하다 보니 우리와 피부색이 달라도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 또한 듣고 싶어진다.

지난 여름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둘째 아이와 캠브리지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잠깐 탔다. 운전기사의 억양이 낯설어서 물어 보니 러시아에서 건너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서도 기간은 짧지만 군복무가 필수적이며 자신은 심장이 약해 군복무를 면제받고 일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체격과 표정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중년의 남성처럼 보였는데,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하여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가는데 한 청년이 이층관광버스 앞에서 티켓을 팔며 홍보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필요 없다고 손을 흔들어 거절하니 그는 미소를 환히 지으며 지금 사지 않아도 되니까 나중에 한번 보기나 하라며 지도를 쥐어 준다. 그 청년은 심심했는지 옆에 있던 둘째를 보며 몇 살이냐고 묻는다. 스물두 살이라고 대답하니 그는 자기랑 동갑이라고 반가워한다.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삼십은 넘은 줄 알았는데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는 여행 중인 둘째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자기도 열심히 돈을 벌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청년들이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여러 유형의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호주에 갔을 때 시드니의 중심가에 나갔다가 피부색이 다른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한 음식점에 가니 한국 청년이 주문을 받으러 오고, 유명 상가에 가니 한국 여학생이 값비싼 물건을 팔고 있었다. 모두들 꿈을 갖고 외국으로 나가 언어를 익히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연구실에 있는데 한 여학생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여학생은 그동안 시간이 없어 잘 찾아오지 못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워낙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학생이어서 바깥 활동을 하느라 학업에 소홀한가보다 했었는데, 서울에서 통학을 하며 밤에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일을 했었다며 웃는다. 여학생은 차라리 외국에 가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외국의 베이비시터 같은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요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마음이 편치가 않다.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고, 기대치에 맞는 일자리도 별로 없다. 청년들의 취업이 힘든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다. 청년들은 꿈을 찾아, 기회를 찾아,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은 훗날 인생의 큰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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