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 건너 광고판에 여자만 장어구이라는 선전문구가 펄럭인다. 여자 손님에게만 장어구이를 판단 말인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어는 남자들이 더 즐기는 것 같던데 여자만 오라니 이상한일이다. 여자를 그만치 우대한다는 뜻일까? 전철에 여성전용 칸을 만든다더니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만 공중화장실 빼고는 여자 남자를 가를 일이 뭐있단 말인가.

알고 보니 그게 여자(女子)가 아니었다. 여자만(汝自灣)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여자도(汝自島)를 중심으로 보성군·순천시·여수시·고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만()을 얘기하는 것이지 여자 손님만 받는다는 게 아니었다. 여자만은 순천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며 그곳에서 나는 장어가 맛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렇지 이 땅에서 누가 그렇게 여자를 떠받들어 주고 여자만 출입이 가능한 집으로 특별대우해주겠는가. 언감생심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난센스다.

조선시대 유교가 국가의 기본이념이 되면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지배하였다. 당시의 여성은 어려서부터 삼종지의(三從之義), 칠거지악(七去之惡), 여필종부(女必從夫), 부창부수(夫唱婦隨) 등을 교육시켜 남성을 존대하고 여성 스스로를 낮추게 했다. 족보에도 여성의 이름은 없고, 출가한 여성의 남편 이름만 적었다. 집안의 일에 대해서도 내주장을 하면 부덕이 없는 여자로 간주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며 남자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해도 큰소리를 내서도 안 되었다. 부부관계도 평등한 것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다. 재혼을 금지시켰고, 여자의 사회진출은 철저히 막았으며 그저 남자의 내조자로 안살림만 맡았다. 남존여비는 전통사회에서 한국 여성의 생애를 지배한 근본 관념이었다.

최근에 와서 여성의 법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어 헌법으로 여성이 사회적·경제적으로 남성과 평등한 위치를 가질 수 있게 보장했으나,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은 관습적으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남아선호 사상도 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느 기업의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건배를 제의하며 남존여비라고 건배사를 했다. 여자들 자리에서 야유가 터졌다. 그런데 그 상사가 말하길, “남존여비란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男存女脾)를 맞추기 위해 있다라고 하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한 남자가 저도 남존여비입니다하자 여직원들의 눈이 커졌다. “남자의 존재 이유는 여자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여자들의 우레 같은 갈채를 받았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남자가 무사히 살아가려면 여자 앞에서 비실비실(女前男卑) 해야 한단다. 남존여비의 남자 존재는 여자에게 비용을 대어 주기 위함이고(男存女費)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여자는 필히 종부세를 내는 남자를 만나야 (女匹綜附) 한다나. 요즘 유행하는 유머지만 세태가 그러하니 아들만 가진 나 같은 사람 복장이 터질 일이다.

남존여비의 나라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되었다. 세상이 뒤바뀐 셈이다. 그동안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한국 여성, 어머니들의 한()과 내공이 쌓여서 여성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게 아닐까.

대통령 당선자를 선덕여왕에 비겨 말한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남녀평등사회였다. 재산 분배나, 상속도 남. 여 가리지 않고 균등하게 했다. 신라 시대에는 선덕, 진덕, 진성 3명의 여왕이 존재했으며 선덕여왕은 신라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많은 업적을 세운 지혜로운 왕이었다.

한국의 첫 여성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는 크다.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여 사회적 약자까지 끌어안고 배려하는 자상함을 기대한다. 인사탕평을 약속했으니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하여 민생대통령, 약속대통령, 대통합대통령을 제대로 실천하여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이끌어 가길 소망한다.

남존여비니 여존남비니하는 구시대적 유물은 내다 버리자. 남자는 여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존중하고 기를 세워줄 때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좋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과 협조가 우선 되어야 한다.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그런 모습은 제발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여자가 뭘 해.” “여자니까 그런 거야.” 이렇게 여자를 들먹이지 말자. 나라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대통령을 만드는 일이 곧 나라의 장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새 시대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다. 희망찬 새 시대가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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