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몽실 양반은 올해로 새해를 76번 맞는다. 그런데 새해의 수명은 정월 한 달로 끝난다. 2월로 접어들면 이제 새해라고 하지 않고 올해라고 한다. 그러니 이런 셈법이라면 새해보다 올해가 그 수명에 있어 열한달이나 더 길다. 그래서 몽실 양반은 언제인가부터 새해에는 장식이를 만나려나?’ 하던 걸, ‘올해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겠지!’ 로 바꾸었다. 그 한 달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죽마고우였던 장식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11개월이나 더 긴 기간을 두고 그 불알친구였던 장식이 만나기를 바라는 게 어쩐지 더 희망적이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그는 장식이가 보고 싶어 빨리 만났으면 하는 염원이 크다. 단순히 죽마고우, 불알친구여서가 아니다.

몽설이가 본명인데 동네에선 그냥 쉬운 발음으로 몽실이라 이름 했다. 처음엔 몽실이라는 게 계집애 이름 같아 이쪽에선 꺼리고 상대방에선 놀리기도 했으나 그냥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냥 그렇게 굳어버렸다. 그도 그렇지만 사람이 이름대로 닮아간다더니 실제로 장식이와 동갑인데도 성격이 걱실걱실하고 키도 훌쩍 큰 장식이에 비하면 여린 성격에 키도 작달막한 게 얼굴까지 몽실몽실하게 생겨 대조를 이루었다. 그런데도 둘은 단짝이다. 동갑내기가 둘 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죽이 잘 맞을 수가 없다. 티격태격 다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두 집안의 형편은 다르다. 몽실네는 그래도 부농 축에 들었으나 장식이넨 어려웠다. 일찍이 장식이 아버지가 노총각이었을 적 몽실네집 머슴으로 3년여를 살다가 몽실이 부모 주선으로 짝 맞아 살림났다. 이게 다 몽실이와 장식이 출생 전 일이니 둘은 이런 사정을 모른다. 당사자들이나 동네에서 일언반구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눈에 띄게 형편이 다르다는 걸 아는데도 둘의 우정엔 하등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몽실인 장식에게 의지했다. 장식의 힘과 기운이 몽실을 보호하고 감싸주었던 것이다. 열 살 때의 일이다. 30리 밖 읍 소재지의 둔치백사장에 벌어진 난장판에 둘이 걸어서 구경을 갔는데 놀이에 팔려 그만 늦고 말았다. 쫄쫄이 굶었으니 허기가 진 데다 다시 30리 길을 걸어가야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몽실인 한 5리 쯤 걷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 장식이가 몽실을 업었다. 장식인 조금 가다 쉬고, 또 업고 가다 쉬고, 쉴 때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몽실이 보는 데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또 업고 갔다. 그러다보니 인제 아주 깜깜해졌다.

얼마나 왔는지도 모르고, 무서워 죽겠고. 몽실인 그만 엉엉 소리 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장식이도 주저앉았다. 몽실인 더 크게 울었다. 그 소리에 장식이가 또 등을 들이댔다. 그때 사람들의 사람 찾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사람들이었다. 장식이는 그로 인해 며칠간 학교를 빠졌는데 이후 몽실인 더욱 장식에게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하루도 옆에 없으면 괜스레 허전하고 우울했다. 그래도 공부는 몽실이가 더 잘했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장식이 좀 가르쳐주라고 해서 숙제를 같이 하면서 가르쳐 주다가 하도 답답해서 그만 숙제를 아주 다해주곤 했다.

장식인 가정형편상 중학교만 다녔다. 몽실인 읍내 농업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그 후 몽실인 장가를 갔는데 장식인 못 가고 있었다. 아직도 소작농으로 집안형편이 나아지지 못한 게 걸림돌이 돼서 혼사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차 마침 그때 아랫녘 처녀를 소개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거간꾼에게 소개비를 주고 처자 쪽에도 어는 정도 금품을 주어야 하는 일이다. 이걸 듣고 장식이 아버지가 몽실 부모를 찾아와 그 비용의 일부를 꾸어갔고 나머지 비용은 몽실이가 댔다.

그래서 장식인 결혼을 했고 곧바로 사내애도 하나 낳았다. 그런데 이는 또 뭔가. 애가 다섯 살이 됐는데 애 엄마가 없어진 것이다. 그 거간꾼이 다시 빼갔다느니, 그 친정엄마가 빼 돌렸다느니, 집안이 별 볼일 없으니 스스로 내빼버렸다느니 추측만 무성한 채 남겨 두고 장식인 어느 날 애를 데리고 훌쩍 동네를 떠났다. “내 어떻게든지 애 엄마를 꼭 찾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우리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고 했잖어!” 하는 말은 몽실에게 남겼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몽실 양반은 빈 방으로 들어갔다. 벌써 몇 해 전 새로 집을 지을 때 우정 부엌 딸린 방을 따로 드렸다. 내자도 안다. “여긴 장식이 방이오. 당장에라도 오면 여기서 기거해야지.” 했던 것이다. 새해를 또 맞았는데도 아직은 빈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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