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며칠 전 작은 소포를 받았다. 발신인을 보니 며느리가 일본에서 보낸 것이었다. 한 달 전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일본에서 잠시 머물던 중 내게 보낸 것이었는데 뜯어보니 몇장의 편지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읽어보니 지난 결혼식 때 유난히 긴 내 목이 인상적이었고 하이넥 즐겨 입는 모습이 기억나 잘 어울릴 것 같아 목걸이를 사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목걸이는 연한 금빛 레이스에 약간의 보석과 구슬이 달린, 천으로 된 것이었는데 언젠가 내가 꼭 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깊은 감동이 일며 참 속이 깊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편지 내용도 우리 가족을 만나 함께 지내며 행복했던 일, 나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등을 영어로 적었는데 그녀의 진심이 듬뿍 느껴졌다. 편지를 수도 없이 읽어 보았고 즉시 거울 앞으로 달려 가 목걸이를 해 보며 천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동안 살며 이렇게 내 마음을 울린 선물을 받아 본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진한 감동이 일었다. 며느리의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이 내게 온전히 전해지며 내 생에 참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되었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 그녀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사람을 가족으로 맞게 되었는가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이들에게 선물을 할 때 진정 마음을 다해 그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선물을 한 적이 있는가 돌아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난 한동안 눈앞에서 치우지 않고 보고 살피고 음미하는 습관이 있는데 며느리 요코의 선물을 거실 다탁에 두고 틈이 날 때 마다 보고 그녀의 마음을 생각했다.

이십 년 넘게 막역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후배가 있다. 그녀와 나는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데 그녀를 만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그동안 읽은 책, 영화 얘기 등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보내는데 이따금씩 그녀 또한 나를 감동시키는 선물을 자주 건넨다.

그녀는 전공인 문학이외에도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북 아트를 가르치기도 하고 전국을 돌며 공무원들에게 올바른 우리말 사용법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녀를 통해 언제나 나는 내가 미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많은 걸 배우는데 언젠가는 가죽으로 된 멋진 다이어리를 손수 만들어주기고 했고 직접 생강차, 땅콩 잼 등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연말을 맞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게 또 다시 작은 선물을 건넸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과 몸에 좋다는 서리태를 갈아 만든 콩물이었다. 이따금 서점에 들르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 많은 법인데 그녀만의 젊은 감각으로 고른 책이라 그녀가 선물한 책은 삽상하고 나를 새롭게 일깨우는 것들이 많다.

이번에 그녀가 고른 책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어김없이 감동시켰다. 그녀가 만들어준 콩물 또한 진하고 고소해 물에 타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해 먹고 있는데 며칠 먹고 보니 피부가 화사해지며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깊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그녀의 마음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말에 받은 또 다른 선물 하나는 친척 형님에게 받은 것이다. 역시 연말 모임에서였는데 훌륭한 서예가인 친척 형님은 불교 신자이며 종가집 외며느리인 나를 위해 반야심경을 써두었다고 했다. 열 폭 짜리 병풍용으로 썼다며 이미 표구집에 맡겼는데 구정 전에 준비가 돼 차례 때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글쟁이인 내게 글쓰기가 쉬운 일이 아니듯 서예가인 그녀에게 열 폭 짜리 병풍용 반야심경을 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싶은 생각이 들며 그녀의 깊은 배려가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특히 반야심경은 내가 아침마다 독송하는 불경이기도 했으므로 그 감동이 더 했다. 깊은 감동이 일며 과연 내가 내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고마운 선물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던가 싶은 마음이 들며 거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실한 마음은 늘 다른 사람을 깨우치고 감동시키는 법, 새해에는 더욱 나를 정화시켜 보다 진실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새해에는 늘 잔잔한 마음으로 나와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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