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처럼 정치권이 스스로 나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해도 드물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치러지다 보니 여야는 표심잡기의 일환으로 특권포기를 경쟁적으로 외쳐댔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 연금 폐지 공약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정초 새벽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금년도 예산안에는 의원연금 관련 헌정회 예산 128억원이 칼질 한번 가해지지 않은 채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아무리 선거 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지만, 이번에는 심했다.

국회의원 연금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이유는 단 하루만 국회의원으로 활동해도 65세 이후부터 연금수령을 가능하게 한 특권 조항때문이었다.

입법권을 지닌 국회의 권능을 금배지 집단의 잇속 챙기기에 동원한 나쁜 선례다.

120만원으로 책정된 수령금도 터무니없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반인이 이 만큼의 연금을 받으려면 매달 30만 원씩 30년을 적립해야 하는 규모다.

비난여론이 들끓자 새누리당은 연금지급 대상범위를 현재의 수령자로 묶고, 의원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소득이 일정수준 이상이면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통합당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 때문에 대선기간 언론들은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후보 중 누가 돼도 의원연금은 폐지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국회 예결위원들에게 쉴 새 없이 쪽지를 들이밀며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혈안이 됐던 의원들은 정작 자기 희생에는 한없이 관대했다.

특히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책임이 민주당 보다 훨씬 크다고 본다.

박 당선인이 내세우고 있는 국민대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선 이번에 의원연금 폐지를 통해 고통분담을 솔선수범했어야 옳았다.

혹여 국회가 이번에 의원연금 폐지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이 선배 의원들에 대한 배려 혹은 로비 때문이었다면 연금폐지법안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령 올해 65세가 되는 전직 의원들에게 연금혜택이 돌아가도록 현행 제도를 그대로 놔뒀다면, 2014년도 예산안 처리 때도 똑같은 일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의원연금 폐지는 잠재적 의원연금 수령자들이 동의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선 현역 의원들이 집단적 의사표시를 통해 선배 전직 의원들을 설득하고, 자신들도 미래의 혜택을 과감히 내려놓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여야는 특권 내려놓기라는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과의 약속을 하루빨리 이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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