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연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와 폭설 등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한파에 쓰러지는 이웃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한파와 폭설로 작황이 부진한데다 설상가상 난방비와 전기요금까지 대폭 올라 시설하우스농가와 화훼농가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제천에서 지난해 12월 초까지 파프리카를 출하하던 노 모씨는 연일 이어지는 한파 탓에 난방비 부담이 가중되자 견디지 못하고 최근 겨울농사를 접었다. 고지대인 탓에 다른 농장들보다 난방비 부담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농장은 어른 주먹만큼 자란 알록달록한 파프리카들 꽁꽁 언 채 매달려 있었고, 줄기는 병든 고춧대처럼 말라 비틀어가고 있다고 한다.

충북 최대 화훼단지인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김모씨의 장미하우스도 알록달록 꽃봉오리 대신 푸른 잎만 무성했다. 유난히 긴 한파와 연이은 폭설 탓에 장미의 생육시기가 한 달여나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느 해 보다 일찍 찾아온 강추위가 3개월째 계속되고 폭설까지 잦아 채광조차 제대로 안 되면서 늘어난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겨울 파프리가 농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전국적으로 몰아닥친 한파 속에서 안타까운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광주에서 보일러를 끄고 전기장판을 약하게 틀어놓은 채 잠들었던 70대 할머니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보일러에는 자식들이 넣어준 등유가 가득했지만 기름값을 아끼려다 변을 당하고 말은 것이다. 앞서 2일에는 서울 마포구 노고산역 공중화장실에서 노숙인이 동사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취임 이후 노숙인 사망 제로를 치적으로 내세운 박원순 서울시장을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남 고흥에서 전기요금을 못 내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촛불을 켜놓고 잠자던 할머니와 여섯 살 외손자가 화재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일부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혹한까지 계속돼 올해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에너지 사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농민들이 겨울 농사를 포기하거나 사회적 취약계층을 차가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국가의 수치다.

정부는 연탄을 사고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을 이용할 때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감면 혜택을 주고 있지만 적절한 체온이나 취사 난방까지를 위한 대책으로는 부족하고 가구별 계절별 특성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생계급여에 광열비를 포함해 지급해도 이용자가 더 급한 용도에 씀으로써 난방을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복지확대를 부르짖는 이때, 한파로 목숨을 잃는 이웃이 생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이 시급하다. 한겨울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소외계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아쉽다.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도 절실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