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석 연 청주서원경교회 담임목사

 새해에는 두 가지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하나는 다름을 수용할 여유요, 또 하나는 실패할 여유입니다.
지난 대선 이후 세대 간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염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이겨서 자식 세대가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투표 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친구 사이에 절교를 선언했다는 젊은 세대의 기사를 읽으면서 걱정보다는 연민이 앞섰습니다.
사회의 통합이 요구되는 만큼 다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거기서 진정한 화해와 발전의 동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새로 서는 정부에서는 강한 독일을 본받으려 한다고 합니다. 강한 독일은 두 거대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DP)이 경쟁과 협력을 지속하며 이상동몽(異床同夢)의 지혜를 발휘해 온 결과입니다. 우리도 장차 좌우를 넘어선 경쟁과 협력의 거대한 흐름을 경험할 수 있으면 합니다.
차이에서 흐름이 나오고 흐름이 힘의 근원입니다. 온도가 다른 공기층이 흐름을 만들어 대기의 순환작용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입니다. 열역학에 엔트로피(Entropy)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온도의 차이가 없어서 일로 변환 되지 않는 물리량을 가리킵니다. 공기가 섞여서 차이가 사라지면 흐름이 끊기고 운동이 정지됩니다. 그런 활용가치가 없는 힘은 유해한 에너지의 쓰레기일 뿐입니다.
내연기관의 동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린더 안의 뜨거운 공기와 밖의 찬공기의 편차 때문에 생겨나는 힘이 자동차를 움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엔진이라도 틈이 생겨서 안팎의 공기가 섞여버리면 힘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혼합운동은 의미가 없습니다. 차원 높은 가치 공유를 통한 화학적 연합이 아니면 오히려 힘의 징지상태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실패할 여유입니다.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승리의 기회입니다. 실패할 여유를 갖는 것은 승리의 긍지를 갖는 것만큼이나 소중합니다. 누구의 인생에도 때로는 촛불이 꺼지고 캄캄한 순간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뱃전에 켜 놓은 촛불이 꺼지면 낭만의 시간 끝난 줄로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촛불이 꺼져야 푸른 달빛이 흘러 들어와 황홀한 감격을 안겨준다고 시성 타고르는 고백했습니다.
자연은 자주 실의의 아픔 다음에 비장했던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실패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성공의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실패가 없는 성공은 없으니까요.
여유가 다음의 승리를 기약하게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과장하고 쉽게 인생 전부를 내걸어버립니다. 그러나 인생은 노름판의 마지막처럼 한 번에 올인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십시오. 전기가 나가면 촛불을 켜놓고 즐기고, 촛불이 꺼지면 달빛의 황홀함에 잠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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