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는 하늘이 내린 직업




1985년 7월. 21살의 나이에 월드비전과 첫 인연을 맺은 장영진(여·49·청주시 상당구 원봉로 52-1·☏043-293-9191) 월드비전 충북지부장.

“어린 나이에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는데…. 방법은 모르겠고, 열정만으로 시작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경기도 과천 한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재학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장 지부장은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가정이 급격히 기운데다 가족들을 부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가족들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 회사에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보셨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라는 직업을 꿈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었죠.”

집안사정 탓에 회사생활을 시작했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심지어 회사 사정까지 나빠지면서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21살의 나이에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월드비전에 입사,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1985년 7월 월드비전에 입사한 그의 첫 근무지는 서울 용전동 한 아파트 단지였다.

당시 장 지부장은 사회복지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 나에게는 지원을 해주지 않느냐’, ‘도움이 필요하다’며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뻗어왔는가 하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어려운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막연하게 일을 한 것 같아요.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고참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도움을 받고 고마워하는 지역주민들의 모습에 하루하루가 기뻤죠.”

그는 봉사를 실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도움을 주고자 틈틈이 시간을 내 대학에 입학 한 뒤 대학원 교육과정까지 마쳐 어엿한 사회복지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장 지부장은 월드비전 총무과장, 재무팀장, 인력팀장 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고 2004년 월드비전 광주전남지부 무진사회종합복지관의 관장이자 지부장으로 발령받았다.

무진사회종합복지관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광주 광천동, 동천동, 유덕동, 학동 지역의 상황은 열악했다.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데다 오랫동안 재개발구역으로 지정 돼 주거환경도 형편없었다.

“당시 그곳의 상황은 정말 많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도움이 절실했죠. 380여명의 결손가정을 돌봐야했습니다.”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 선수는 11년간 무진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움을 주었고,그런 도움을 발판으로 양 선수는 한국체조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월드비전 광주·전남지부장에서 충북지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장 지부장.

수많은 자리를 거쳤지만 가끔씩 관장·지부장이 아닌 평범한 봉사자로 사람들을 돌봤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뜨거운 마음과 냉철한 머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있는 남편 김삼열(51)씨와 아들과 딸이 생각날 법도 하지만 남을 돕기 위한 일로 모든 것을 잊는다는 그는 충북 사회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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