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이 고장에서 유일하게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강준희 대작가(30여권의 소설 및 에세이 발간, 미국 하바드대에 소장)께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승기자염지(勝己者厭之)’라는 성어가 있다. 재주나 학식 및 지식, 기타 등이 자기보다 앞서는 사람을 싫어하고 배척한다는 말이다.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잘생겼거나 말을 잘하거나 키가 크거나 돈이 많거나 좋은 옷을 입었거나 학력이 높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경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나 자세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그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하나의 풍토(風土)로 번져 가고 있다. 공룡처럼 거대해진 재벌기업들의 천문학적인 부와 그 부의 대물림을 보면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들은 위화감(違和感)을 갖게 되었고,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배타적(排他的)인 목소리 및 몸짓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정당방위로 도색되면서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고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공·사조직이나 단체의 대표자 선출에서 공공연하게 표출되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그 자리에 맞는 적임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비슷하거나 접촉하기에 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기 보호적, 이기주의적 행태를 취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학·경력, 문제해결능력, 경륜 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월등히 앞서 있는 인물이 있는데도 그 반대의 인사에게 표를 찍는 비정상적인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는 작게는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 되고 크게는 사회가치체계를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표로 세움으로써 대리만족을 취하려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왜소하게 만듦은 물론 자신의 인격을 추락시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심리들이 여과 없이 사회풍토로 자리하게 되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되고 종국적으로는 부메랑(boomerang·되돌아옴)이 되어 자신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인간은 모름지기 대승적(大乘的)인 삶을 영위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양식과 이성을 가진 존재로 정립시켜야 한다. 모든 현상을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진단하고 처방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능력 또는 재능(talent)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평가하여야 한다. 객관적인 관점이나 위치에서 볼 때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 여겨지면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 점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혐오하거나 평가절하 한다하여 자신에게 전혀 플러스가 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이치를 알면서도 인간은 곧잘 남을 깎아 내리거나 싫어하고 멀리하려는 행각을 거리낌 없이 벌인다면 이는 소인배의 범주에 안주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 생각하는 동물, 존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에 맞는 언행을 하여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필자의 뇌리에 승기자염지라는 용어가 자꾸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세계가 인정하는 정상국가로 진입할 수 있고 정의롭고 예절이 바르며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격조 높은 국민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바로세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편견이나 사시적이 아닌 이성과 객관적인 관점이나 시각에서 보는 의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자기와의 친소나 이해관계 및 시기질투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 등의 이기적, 부정적 시각에서 보지 않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부터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다. 인간은 양심이라는 화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안이나 대상을 보거나 평가할 때 양심의 화원에서 자신과 대화를 하면 바로 정답을 구할 수 있다.

승기자염지풍토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퇴색시키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못된 독소라는 점에서 서둘러 추방하여야 한다. 본질의 관점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하는 품격 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능력과 정체성이 제대로 평가되고 인정되는 풍토를 조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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