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내 딸 서영이' 이보영.."남의 삶에 대해 함부로 얘기못해"

마침내 모든 게 터졌다. 이서영의 거짓말이 다 탄로가 났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너무너무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어요. 세상 앞에 발가벗겨진 기분이었죠. 촬영 전부터 걱정이긴 했지만 막상 슛이 들어가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거에요. 바들바들 떨렸고 무슨 정신으로 연기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장면이든 상대방의 시선을 보고 연기를 해왔는데 그 장면에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서영이' 이보영(34)은 전날 방송된 문제의 장면을 회고하며 촬영 당시의 힘겨웠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최고 인기 드라마 KBS 2TV 주말극 '내 딸 서영이'가 지난 13일 방송에서 서영이의 거짓말을 모두 까발리며 정점을 찍었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남동생에 대해서도 숨겨왔던 그의 실체가 남편과 시댁 식구 앞에서 모두 드러난 것이다.

서영은 그 길로 집을 나갔다.

이보영은 이에 대해 "가출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서영이 성격상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느니 그냥 떠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화로 그를 만났다. 지난해 마지막 날 KBS 연기대상에서 '적도의 남자'로 우수연기상을 받고, 새해가 밝자마자 '내 딸 서영이'로 시청률 40%를 넘긴 주인공이다.

그는 축하인사에 "감사하다. 그런데 오래 가야 할 텐데"라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드디어 터졌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나.

"모든 비밀이 드러났으니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서영이도 많이 아파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는 해결하고 수습해나가야겠지. 서영이와 아버지(천호진 분)가 풀어야 하는 부분도 크다.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드라마니까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거로 생각한다."

-서영이의 지금 상태는 어떠한가.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속은 아파죽지만 아닌 척한다. 또 변명도, 설명도 안 하고 위악을 떤다. 하지만 그러면서 얼마나 상처를 받겠나. 진작 솔직히 말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되지 않았느냐고들 하지만 서영이는 소통이 부족하고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다. 자라면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행동했다. 부모도 도움이 안 됐고 친구도 없었고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자신의 일을 누구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 마음을 줬다고 생각하는 남편 우재(이상윤)나 시동생 성재(이정신)와도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일정 거리를 두고 관계를 차단하고 혼자서 결정한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약해빠졌다. 또 결벽증으로 보일만큼 올곧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모든 사단이 벌어졌다. 판사도 그래서 그만둔 거다."

-우재는 서영이가 재벌가에 시집오려고 아버지를 부정했다고 오해한다.

"그건 아니다. 우재도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한 오해는 풀었으리라 생각한다. 재벌가가 목적이었다면 피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 이유를 우재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서영이는 결혼할 마음 자체가 없었던 아이다. 끝까지 결혼을 안 하려고 했기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어서 가족이 없다고 한 것이다. 우발적인 거짓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재의 사랑 때문에 변화했고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는 나중에 고백하려니 못한 것이다. 난생처음 행복을 가져보려고 하는데, 자신을 믿어주는 우재와 시어머니에게 차마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살면서 왜 고백하려고 하지 않았겠나. 몇 차례 시도는 했다. 하지만 자신을 '존경할만한 여자'라고 하는 우재 앞에서 번번이 입을 못 연 것이다."




-각종 거짓말로 인해 드라마가 패륜, 막장 등의 지적도 받는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있을까. 나 같아도 너무 큰 치부이기에 입이 안 떨어질 것 같다. 서영이가 사춘기에 받은 상처는 나이가 들어도 극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해를 하더라도 극복은 못 한다. 서영이더러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하지만 차마 말을 못하는 것이다. 성재의 출생의 비밀을 두고 막장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속상하다. 우리 드라마는 데칼코마니적이다. 성재의 출생의 비밀을 통해 우재가 서영이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도 성재의 비밀을 서영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 서영과 절연했던 상우(박해진)는 미경(박정아)과의 사랑을 통해 비로소 서영이를 이해하게 된다. 또 서영은 성재의 친모 소미(조은숙)를 통해 가족으로 인한 아픔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안 밝히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파장이 살아가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연기자 입장에서 서영이를 100% 이해하나.

"물론이다. 대본을 받아들 때마다 너무너무 안쓰럽다. 화면상에는 무심히 흘러간 대사와 장면이 많았는데 그것을 다 들여다보면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설명된다.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고시원이라는 데를 가봤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믿을 데 하나 없이 고시원에서 어렵게 혼자 살아간다는 게 어떤 기분이겠는가. 과연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 부모, 형제와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누구도 남의 삶에 대해 함부로 얘기 못 한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서영이를 이해하는 폭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서영이는 지금도 아버지를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돌아가고 싶은,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있다. 돌아가면 다시는 그런 선택을 안 하겠지."

-깊이 있는 심리묘사가 장점이지만, 도중에 우재의 방황 등으로 지루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드라마는 심리적으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에서 모든 일이 순서대로 딱딱 빨리빨리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간 이런저런 일과 감정들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폭발력이 큰 것 같다. 배우들 모두 대본을 받아볼 때마다 감탄한다."

-시청률이 40%를 넘었다. 촬영장 분위기가 어떤가.

"힘이 난다. 30% 넘었을 때는 상윤 씨가, 35%를 넘었을 때는 내가 한턱냈다. 40%에서는 정아 씨가 쏘기로 했다. 분위기 너무 좋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